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주작’이라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관심을 받고자 지어낸 이야기를 말하는데요. 때문에 ‘내가 실제로 직접 겪었다’는 의미에서 ‘인증’을 해야만 하는 웃픈 행태도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짤막한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쌀 값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조금 의아한 제목을 달고 말이죠. ‘하’라는 닉네임을 가졌을 뿐, 어떠한 개인정보도 없는 상태였고요.
내용을 살펴보니 이랬습니다.
“거두절미, 이런 글 올리게 될 줄 몰랐어요.. 쌀이 떨어져서 밥을 못먹고 있는데 만원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글 올려봐요.. 다음달에 꼭 갚겠습니다.. 글이 불쾌하셨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삭제하겠습니다..”
거두절미라는 말이 딱 와닿았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자신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글쓴이는 그저 ‘다음달에 꼭 갚겠다’ 정도의 내용만을 담았죠. 어떤 댓글이 이어졌을까요?
“제가 나라미를 받는데 조금 나눠드릴수 있어요. 연락처나 메일주소 남겨주시면 택배비 부담은 제가 하고 쌀 보내드릴게요. 저도 애기랑 먹고 살아야 해서 한포대 다 못드리지만요.”
“댓글 보시면 꼭 연락주세요. 식품을 보내드리든지 아니면 약간이나마 돈을 보내드리든지 도와드리고 싶네요. 톡 아이디 남겨둘께요.”
“나도 없지만 만원은 보내드리리라. 창피해하지말고 이게 사기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범죄에만 쓰지 않는다면 내가 누군가를 돕는 거에 쓰는거니. 제 메일로 계좌찍어놓으세요. 그리고 이번일로 도움을 받는다면 아주 나중에라도 당신도 누군가에게 조그만한 도움이라도 되는 사람이 되세요.”
글쓴이는 댓글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모두 읽어본 듯 했습니다. 이어 “너무 속상해서 마지막으로 위로 받고자 쓴 글인데 댓글 보고 한참 울었다”면서 “계좌나 주소를 적을 용기도 없으면서 서러워서 글을 썼다”고 적었죠.
글쓴이의 마지막 말은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쌀이 없어 배를 곯는 다던 사람이 타인의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 댓글 몇 줄은 글쓴이의 허기를 채워줄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풍족하게 만들어주었나봅니다. 글쓴이를 울린 댓글들을 곱씹으며 다시 읽어보니, 눈이 유독 오래 머문 글이 있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네요. 힘내세요. 고비 넘기면 좋은 일 있을겁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