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의 최저임금 차별을 부탁드립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임금을 동결해야 합니다.”
내년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된 지난 14일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같은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농민들과 중소 영세업체 업주들이 올린 글로, 최저임금 상승분이 일괄 적용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득영(51)씨는 17일 “네팔인 근로자 2명에게 각 월 160만원을 보수로 지급하지만 숙소 냉난방비, 식비, 부식비 등을 포함하면 실제로 한 명당 200만원 넘게 들어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년에는 도저히 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한 명을 줄여야 할 판”이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직원한테 월급 주려고 고생해서 농사짓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토로했다.
수도권의 K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표 이모(44)씨는 “잔업이 많아 외국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월급이 220만원”이라며 “잔업을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내년에 임금이 인상되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중소기업 대표들은 지난 16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외국인 고용 시 근무 연차와 생산성을 고려해 임금을 차등화할 수 있는 수습기간 제도를 도입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국인과 외국인 근로자가 비슷한 임금을 받더라도 외국인 근로자는 관행상 숙식, 식사, 전기·수도요금 등을 받아 실제 임금이 내국인보다 높은 역전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소득의 70∼80%를 본국에 보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최근 난민 문제로 불거진 ‘외국인 혐오 현상’도 이 주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통계청·법무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2017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상주 외국인 임금근로자는 83만명이다. 최저임금 인상 수혜 대상으로 분류되는 월 100만∼200만원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는 30만9000명이다. 반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전체 근로자 수는 500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보고서에 따르면 상주 외국인 근로자들은 ‘생활비’에 가장 많은 지출(40.7%)을 했다. 이어 국내외 송금(24.9%) 저축(15.7%) 주거비(12.0%) 등 순이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소득의 대부분을 해외로 송금한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임금이 낮다면 사용자는 외국인을 우선 고용하게 될 것이며 결국 내국인은 일자리를 잠식당하게 될 것”이라며 “외국인 차별 방지 제도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