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최저임금의 늪’에 빠져들었다. 온갖 논란과 주장이 뒤엉키고 있다. 우울한 경제지표나 실태가 모두 최저임금 때문이라는 ‘최저임금 깔때기 현상’까지 나올 지경이다.
경영계는 지난해 시간당 6470원이던 최저임금이 2년간 29.0% 올라 내년에 8350원이 될 정도로 가파른 인상 속도에 반발한다.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수준보다 빠른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개정 하도급법이 대기업에 최저임금 인상분을 전가한다는 비판까지 덧붙었다.
노동계라고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게 촉매가 됐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최저임금에만 집중시키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 한국의 최저임금은 금액만 놓고 보면 높은 수준이다. 1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26개 회원국(최저임금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가운데 한국은 14위다. 이 순위는 최근 급격히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달러로 환산한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7.4달러로 2016년 10위를 기록한 일본과 같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의 이유로 제시했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도 달라진다. 한국은 2016년 이 비율이 40%로 하위권(15위)이었지만 지금은 8위였던 독일(42%)보다 격차를 줄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경제 규모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겉으로 보이는 숫자만으로 한국의 최저임금이 높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우선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과 고소득 근로자의 격차가 너무 크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 상위 10% 근로자와 하위 10% 근로자 간 소득 격차는 4.3배나 된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이 격차가 큰 국가는 미국(5.1배)뿐이다.
최저임금 때문에 사업자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주장도 허점이 있다. 한국에서 사업자들이 근로자를 위해 내는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 부담률은 지난해 기준 10.36%다. OECD 평균(17.49%)보다 낮다. 20∼30%를 부담하는 유럽 국가와 큰 차이를 보인다. 최저임금 하나만으로 사업자 부담이 마냥 높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노동생산성 향상 속도보다 2.2배 빠르다고 꼬집은 것은 뒤집어보면 중소업체의 생산성이 너무 낮다는 얘기가 된다. 권혁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최저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을) 감내할 능력이 떨어지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전가한다며 경영계에서 지목하는 개정 하도급법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개정 하도급법은 최저임금이 인상됐을 때 하청업체가 대기업 등 원청 업체에 대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소·중견기업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높아진 이유를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에서 찾는다. 개정 하도급법은 이런 단가 후려치기를 방지하자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한편 최저임금보다 상가 임대료를 걱정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선 5년이 지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마음껏 올릴 수 있다. 부담은 고스란히 영세사업자 몫이다. 여기에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권리금도 붙는다. 권 교수는 “소득 재분배가 목적인 최저임금 인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임대료처럼 다른 약한 고리가 여럿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