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 감이동(감일택지개발지구) 개사육장에 있던 개 240여 마리는 썩은 음식과 분뇨가 나뒹구는 곳에서 지냈다. 사육·도축업자는 수년 전 이 개들을 감이동 사육장으로 옮겨와 방치했다. 개들은 지난달 발견됐다. 하남시는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신고를 받고 이달 초 동물보호 긴급 격리조치를 집행했다. 이 개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지금도 사육장 주변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몰래 찾아와 개들을 빼내려 하는 업자들이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사육장은 아직 포장도로가 부족한 개발지구 안에서도 흙길을 따라 차량으로 3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외딴곳에 있다. 개들을 구출해 보호하는 임시 거처는 바로 옆에 있다. 보호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정진우(41·자영업자)씨의 도움을 받아 16일 오후 9시40분쯤 인근 사육장에 들어갔다. 정씨는 하루 전 개식용 중단을 위한 국토대장정단 활동을 마치고 급히 이곳에 왔다고 했다.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보초를 서기 위해서였다.
이승희(29·여·회사원)씨는 이미 오후 7시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씨와 다른 남성 봉사자와 동행해 사육장 내부를 둘러봤다. 렌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땅에서 위로 20~30㎝가량 올라온 뜬장 70여개가 가장 먼저 보였다. 뜬장은 동물의 배설물 처리를 위해 바닥을 철창으로 만들어 위로 띄운 장을 말한다. 이 바닥에서 동물은 몸을 뉘여도 통증을 느낀다. 뜬장의 신규 설치는 지난 3월부터 불법이다.
개들은 파리가 들끓고 곰팡이가 핀 음식물쓰레기를 사료 대신 먹었다고 한다. 봉사자들은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개 사체 수십여구와 배설물이 철장 안에 뒤엉켜 악취가 진동했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봉사자들의 수습작업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다만 보호소로 옮기는 과정에서 탈출한 몇몇 개들이 사육장 내부를 배회하고 있었다. 개들은 사람 발소리가 들리자 큰 소리로 짖으며 경계했다.
보호소는 이 사육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대형견과 소형견은 분리된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대형견과 다르게 소형견은 인기척을 느끼자 꼬리를 흔들며 철장 주변에 몰려들었다. 어쩌면 사람과 함께 살았던 반려견이었을지도 모른다. 피부병을 앓아 털이 빠지고 사료를 거의 먹지 못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마르기까지 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정씨는 울분을 터뜨리듯 “이 아이들이 다 사람을 좋아해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토했다.
◇‘알박기’에 동원된 개들… 봉사자들 “업자들이 지금도 호시탐탐” 주장
시는 사육장이 들어선 시기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택지개발이 시작된 5년여 전으로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개농장을 운영하던 사업주가 토지 보상금을 받고 떠나자 인근 성남 모란시장 상인 60여명이 이곳을 무단 점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모란시장에서 개 식육점을 불법으로 운영하다 퇴출된 상인들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상인들은 개들을 데려와 방치하고, 죽으면 다시 채워 넣워 사육장을 운영하고 토지 보상금을 요구하는, 이른바 ‘부동산 알박기’를 시도했다고 한다.
케어는 지난 5일 학대 실태를 고발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시를 상대로 240여마리에 대한 긴급 격리조치 집행을 요구했다. LH는 업자의 출입을 막고 보호소가 될 담장 설치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지난 6일 새벽 대형견 50여마리가 사라졌다. 이 많은 개들이 사람의 손에 이끌려 나가지 않았으면 들개 무리가 되거나 사체로 주변에서 발견됐을 것은 자명하다. 시 관계자는 “개 주인이 몰래 빼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긴급 격리조치는 그 다음에 내려졌다.
시는 펜스가 설치된 뒤 업자들의 개 유출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육장을 지키는 봉사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현장 수습을 돕고 있는 하남동물자유연대(연대) 회원 장승희(36·여·회사원)씨는 사육장을 운영하던 업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차량과 오토바이를 타고 계속 찾아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벽 3~6시 사이 인적이 드문 시간에 온다. 어제(15일)도 왔다”며 “대놓고 ‘개 빼러 왔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한 명은 내게 ‘몸조심하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지난 8일 낮 사육장에 왔던 남성을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남성은 자신을 “이곳에서 개를 파는 사람(업자)의 직원”이라고 소개하고 “개를 가져가기 위해 그 사람을 따라왔다”고 했다. 장씨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에워싸고 있으니 몇 마리라도 빼낸 뒤 식용 목적으로 팔아넘기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보호소는 장씨의 말처럼 철근 절단기 등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허술했다. 출입문 잠금장치는 철제 자물쇠 하나였다. 개식용 중단을 위한 국토대장정단 대원인 정씨는 “여기에서 보초를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뚫으려면 무조건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른 봉사자들이) 뒤쪽 길로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대형견 철장과 땅바닥 사이의 틈이 너무 높다”며 “진입 가능성이 있는 3곳을 막고 보초를 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태를 살피러 온다는 것 자체가 빼내려는 의도 아니겠냐”고 했다.
연대 회원과 봉사자들이 지금은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봉사자 대부분이 생업에 종사하고, 후속 지원자 수도 적어 인원을 여유롭게 투입할 여력이 안 된다고 한다. 봉사자들은 출·퇴근 시간 전후로 이곳을 지키며 개들을 돌보거나 보초를 서고 있다.
보호소를 벗어나 사육장 진입로로 돌아가는 길, 이씨가 ‘검둥이’라고 부르는 검은색 개 한 마리가 뒤따라 왔다.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던 검둥이는 일행 중 한 명이 손을 뻗자 뒷걸음질을 쳤다. 이씨는 “사람을 아직 무서워해서 그런다”고 말했다. 진입로 입구는 업자의 차량 접근을 겨우 저지할 중형 SUV로 막혀 있었다. 검둥이가 고작 몇 걸음만 걸으면 닿을 거리였다. 이씨는 “(LH 측에서) 입구를 돌로 막을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표창원법, 해결 실마리 될까
이 개들의 소유주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시는 지난 3일 ‘개들에 대한 소유자 확인 공고’를 내고, LH로부터 넘겨받은 인적사항을 검토한 뒤 개 소유주로 의심되는 8명 중 2명을 동물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사육장 내부에 있던 도축 기계에 최근 사용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곳에서 도살이 이뤄지지는 않은 것 같다”며 “사육장을 운영했던 사람 대부분이 모란시장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던 상인들이다. 개들을 방치하는 동안 일부를 식용 목적으로 데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 개 사육장은 미신고 상태로 적발돼도 처벌이 약하고 관리·감독할 인력도 부족해 가축분뇨 처리시설을 갖추지 않는 비위생적 사육환경이나 뜬장과 같은 비인간적 설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사육장을 적발해도 대부분 농장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감이동 사육장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미 보호소 마련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만 업자들이 몰래 개들을 다른 사육장으로 빼돌리거나 식용 목적으로 판매할 것으로 의심하고 있어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지난달 21일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임의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도살이 가능한 경우를 예외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이 경우도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쪽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동안 개와 고양이는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분류돼 있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면 개와 고양이를 임의로 도살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 행위가 되고 동물학대와 마찬가지로 처벌받는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가축분뇨법 개정안’은 통과됐다. 이 개정안은 소·말·돼지 등의 축사에 대해 그 규모에 따라 정해진 기한까지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면 최대 1년까지 적법화 기간을 연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법화된 분뇨처리시설을 갖추지 못할 경우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이 개정안에서 개농장은 연장 대상에서마저 제외됐다. 적법화할 시간마저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이 법안에 이어 표 의원이 발의한 법까지 통과되면 개와 고양이에 대한 도살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론은 존재한다. 대한육견협회는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개식용 합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협회 회원들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생존권 투쟁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식용견과 애완견은 분리해야 한다”며 “반려인들 때문에 전통적인 식문화를 인위적으로 제재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개와 고양이처럼 반려동물로 분류되는 일부 종만 식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목소리에 대한 반발도 있다. 배우 한예슬이 ‘개를 가축에서 제외해 달라’는 취지의 국민청원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의 일각에서 ‘채식주의자가 아닌 그가 청원에 동의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개 식용 논란마다 제기되는 이 비판에 대해 ‘모순’보다 ‘시도’에 의의를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 대표는 “한 종의 동물이라도 고통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식육으로 소비하는 소·돼지는 당장 실천이 어려우니 개나 고양이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라며 “양심은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선(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글·사진=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