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사실화된 최저임금 속도조절…혁신성장 드라이브 힘 실리나

입력 2018-07-16 16:24 수정 2018-07-16 18:52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만나 “최저임금 인상이 하반기 경제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한 목소리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을 언급한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온 이례적인 상황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보다 점진적 인상에 무게를 두면서 향후 정부 경제정책 운용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파기 사과한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여민1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어려운 결정을 내린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편으로 최저임금위는 지난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이어 올해도 두자릿수 인상률을 결정함으로써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의지를 이어줬다”며 “정부는 가능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4일 사용자 측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35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7530원)보다 10.9% 인상된 금액이다. 올해 인상률(16.4%)보다는 인상 폭이 줄었지만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반면, 인상 폭이 10% 내외에 그침으로써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이 사실상 어려워지게 됐다.

특히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 목표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에 대해 유연한 해석을 당부한 것도 중대한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진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가 기계적 목표일 수는 없으며, 정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동시에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를 살리고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와 내년에 이어 이뤄지는 최저임금 인상 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내는 것이다. 노사정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노력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2020년 목표 달성을 밀어붙이기보다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노사정이 함께 최저임금을 달성하자’는 현실론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최근 경제·금융 현안과 대응방향을 논의를 위한 조찬 회동을 하기 전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뉴시스.


◇김동연 작심발언 “최저임금 인상, 하반기 경제운용에 부담”

그간 ‘속도조절론’을 주장해왔던 김 부총리는 한 발 더 나가 최저임금 인상을 경제운용의 리스크로까지 꼽았다. 김 부총리는 한은에서 열린 이 총재와 조찬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취약계층 근로자 등을 봤을 때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이 하반기 경제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금년도에 일부 업종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현실화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사업자의 부담 능력을 감안할 때 앞으로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일부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완책으로 운용중인 일자리안정자금 증액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김 부총리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서 3조원 가까이 지원했는데 보완책으로 효과가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서 시장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을 통한 소득증대, 재정 투입으로 부작용 최소화라는 기존 정책 기조의 대수술을 예고한 대목이다.


사진=뉴시스


◇대내외 고조되는 위기감…혁신성장 불 지피기 포석

김 부총리의 작심 발언은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을 거쳐 나온 인상이 짙다. 5개월 연속 취업자 증가 수가 10만명대에 그치는 등 ‘고용 충격’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청와대 내부에서는 더 이상 소득주도성장에만 기댈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이행이 어렵다고 선언한 것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핵심 목표 달성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공약 파기 사과와 이에 발맞춰 나온 김 부총리의 “최저임금 인상은 부담”이라는 발언은 하반기 정책기조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규제 완화와 창업 활성화 등으로 대표되는 혁신 성장론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부총리가 내년부터 시행될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하반기 경제운용의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선제적으로 ‘심리’를 강조했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불안심리로 고용 뿐 아니라 내수활성화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이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부총리는 “지금 시장과 기업의 경쟁 마인드, 혁신성장 이런 측면에서 보다 경제를 활용하는 심리적 마인드를 좀 더 촉진시켜야 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두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대외 리스크가 장기화되는 와중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하반기 경제팀의 최대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는 조만간 정부가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될 전망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저소득층 소득 증대 및 재정 투입을 통한 일자리 증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올 하반기부터는 혁신성장 생태계를 조성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방안 등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