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남자 검사의 0.5야”…여검사 10명 중 8명, 성차별적 조직문화 경험

입력 2018-07-15 17:36
법무부 성희롱 성범죄 대책위원회 권인숙 위원장. 뉴시스

여성 검사 10명 중 8명은 조직문화가 성평등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검사의 85%는 업무배치 등에서 불리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넌 남자 검사의 0.5야” “여자니까 너는 성폭력 사건이나 담당해”라는 등 상급자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숙)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법무·검찰 모두 성별 편중 인사가 심각하고 여성의 대표성이 유독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법무부 장관 직속 성평등위원회 등의 신설을 권고한다”고 15일 밝혔다.

법무·검찰 내 여성 7400여명 전수 조사 결과는

대책위는 지난 2월부터 3개월 동안 법무·검찰 내 여성 구성원 7400여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성범죄 등과 관련해 실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8%가 ‘조직문화가 성평등하지 않다’고 답했다.

여성 검사들이 느끼는 성차별적 문화는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검사로 대상을 좁히면 ‘조직문화가 성평등하지 않다’는 답변의 비율이 82.3%로 뛴다. 여성검사 7명 중 6명(85%)은 ‘근무평정·업무배치·부서배치에서 여성이 불리하다’고 답했다. 이는 법무·검찰 내 전체 여성들이 느끼는 불리함(50.9%)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검찰 내 여성들이 업무 배치에서 불리하다고 여기는 이유로는 상급자가 남성을 선호하기 때문(39.5%), 여성의 출산·육아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39.0%)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법무·검찰 내 여성 절반 이상이 ‘조직문화가 성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남성에게 유리한 업무 특성과 평가 방식(34.7%),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조직 운영 시스템(30.7%), 남성 위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분위기(24.3%)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와 같은 조직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성평등위원회 신설·평등 순환보직 체계 마련” 등 권고

대책위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법무부 장관 직속 성평등위원회 신설을 권고했다. 대책위가 구상한 성평등위원회는 법무부 내 성평등 추진전략과 시행계획을 세우고, 이행을 점검하는 등의 업무를 맡는다.

구체적으로 법무부 기획조정실에 국장급의 ‘성평등정책관’을 신설하고 산하에 성평등정책담당관, 성희롱 등 고충처리담당관을 배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신설되는 조직에는 외부 전문가 70% 이상이 참여하고 특정 성별이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대책위는 검찰 주요보직에 30% 이상의 여성 검사를 배치해 주요 보직에서 성평등 인사를 실현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여성 검사는 650명으로 전체 검사 2158명 중 30.12%에 이르지만, 부부장검사 이상 여성 간부는 52명(7.98%)에 불과하다. 주요 부서로 꼽히는 법무부 근무 검사 65명 중 여성은 8명(12.3%), 대검찰청은 69명 중 4명(5.79%)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의 여성 검사 비유도 20.1% 정도다. 여성이 전체 검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주요 부서 근무는 현저히 낮다는 게 대책위 판단이다.

대책위는 인사에서 성별에 따른 편견을 배제하고, 평등한 순환보직 체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먼저 검찰·교정·보호·출입국 등 각 법무·검찰 내 각 영역의 인사·예산·감찰 담당 등 주요 보직에 여성을 우선 배치할 것을 요구했다. 검찰의 경우 주요 보직인 법무부·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 여성 검사를 전체 비율에 맞춰 30% 배치하도록 했다.

이 밖에 남성 육아 휴직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일과 생활이 양립 할 수 있는 조직 운영과 제도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성평등위원회는 성평등한 인사기준을 마련하고, 일·돌봄·쉼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정책을 세우고, 성평등 교육·훈련을 총괄하는 업무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검찰 조직의 성희롱·성범죄 문제는 어떻게…

법무부 및 소속기관에서 발생한 성적 침해행위 사건을 성희롱 등 고충처리담당관에게로 일원화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담당관이 사건을 접수하면 성평등위원회가 성희롱 여부 판단, 수사의뢰, 징계요구 등을 도맡는 방식으로 사건을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산하기관별 내부 결재는 폐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성희롱 등 고충처리담당관의 신설은 현재 법무·검찰 내 259개 기관에 설치된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 전수조사 결과 여성 구성원의 61.6%가 성적 침해행위를 당했다고 답변했으나, 2011∼2017년 이 위원회에서 처리된 성희롱 고충사건은 18건에 불과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