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비서였던 김지은(33)씨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 재판에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54)씨가 법정에 처음 증인으로 출석했다. 민씨는 김씨가 비서 시절 안 전 지사를 애인 대하듯 해 불안했으며, 가까운 지지자들조차 김씨의 행동에 의구심을 드러내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털어놨다.
◇“위험한 사람이니 멀리 하라고 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13일 열린 안 전 지사의 5차 공판에서 민씨는 “김씨가 안 전 지사를 좋아한다는 걸 여러 번 느껴 불안하고 불쾌했다”고 증언했다.
민씨는 그 사례로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 부부가 충남 보령 상화원 리조트에 묵었을 때를 들었다. 민씨에 따르면 김씨는 새벽 4시쯤 부부 침실로 와 두 사람을 침대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민씨는 “(김씨의) 상체가 기울면서 내려다보는 듯 했다”면서 “당황스러웠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안 전 지사가 ‘지은아 왜 그래’라며 부드럽게 말해 그것도 불쾌했다”며 “새벽에 왔으면 화가 나야하는데 너무 부드럽게 물어봤다. 김씨가 ‘아, 어’ 두 마디 하더니 후다닥 도망치듯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씨 대책위는 이날 입장을 통해 “피해자는 당시 상화원에서 숙박하던 여성이 안 전 지사에게 보낸 문자가 (전화기에) 착신돼 온 것을 확인했고, 다른 일이 일어날 것을 막기 위해 안 전 지사 숙소 앞 옥상으로 올라가는 곳에서 대기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업무수행이었다고 반박했다.
민씨는 또 ‘김씨가 안 전 지사를 성적으로 좋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그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 “‘이 분이 위험한 사람이다. 남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다’ 생각에 불안했다”고 말했다. 민씨는 안 전 지사에게도 “(김씨가) 위험한 사람인 것 같으니 멀리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지지자들도 이상하게 여겨”
민씨는 지지자들로부터도 김씨 관련 제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15년된 지지자가 말하길 ‘여자 지지자들이 안 전 지사에게 다가오거나 꽃다발을 가져오면 (김씨가) 못 만나게 하고 행사를 빨리 끝내려 하고 여자들에게 특히 심했다’고 했다”며 “저랑 친한 지지자인데 ‘마누라 비서’ ‘자기가 마누라야 뭐야’ 이런 얘기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민씨는 왜 불쾌한 티를 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사적 감정이라는 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좋아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며 “피해자에게도 감정은 있을 수 있고 공적 업무 수행인데 제가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씨는 “상화원 사건 이후로도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다”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감정적 평가 자제하라” 진술 끊은 재판부
민씨는 지난해 7월 김씨가 수행비서가 된 이후 관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민씨는 “처음 보는 수행비서가 ‘지사님, 잘 주무셨습니까’ 하면서 안 전 지사에게 달려오는데 볼에 홍조를 띤 채 애인 만나는 여인의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느낌을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 봤던 사항을 사실관계 위주로 말해달라”며 민씨 발언을 제지하기도 했다.
민씨는 김씨를 처음 알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큰 아들과 친했는데 큰 아들이 ‘누나가 엄마 칭찬 많이 하더라’고 해서 얼굴도 모르는데 (그렇게) 얘기하니 고맙네 생각하고 말았다”면서도 “서너 번 계속 그러니까 의도성이랄까 불쾌했다”고도 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재판에 앞서 “재판 공개결정 이후 증인들의 발언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돼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김씨 측은 “피해자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을 전부 방청하려 했으나 자책감과 불안 등으로 입원치료 중”이라며 “재판부가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걸 알지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관련 신문은 제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도 “십분 공감한다”면서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 무관한 피해자의 성향 공격은 자제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