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파는 싫어요’ 오직 외국인만… 축구협회의 선택은?

입력 2018-07-11 10:08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축구는 4년 주기 월드컵에서 여러 번 감독을 교체했다. 늘 국내파 감독과 외국인 감독이 번갈아 가는 선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울리 슈틸리케와 신태용에 이어 이번에는 다시 외국인 감독의 차례다. 많은 축구 팬들을 비롯한 국민들 역시 한 목소리로 외국인 감독의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역대 외국인 감독들은 대부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경질됐다. 2002 월드컵 때 한국의 기적 같은 4강 신화로 인해 이후 외국인 지도자들은 거스 히딩크의 향수 속에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온갖 비판만 듣다 물러나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지난 5일 대한축구협회는 축구회관에서 감독선임 소위원회를 열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대한 평가와 함께 차기 감독에 대해 논의를 했다. 결국 김판곤 위원장을 주재로 한 대표팀감독 선임위원회는 이달 말 계약이 끝나는 신 감독을 차기 감독 후보군에 포함했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 승리의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외국인 감독 선임이 유력하지만 아시안컵이 채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신 감독의 연임을 비롯한 국내파 감독의 선임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새로운 감독이 부임해 지휘봉을 잡고 첫 번째로 치르게 될 국제 메이저 대회는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다. 자신의 축구 철학과 전술적 역량을 발휘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외국 감독을 선임할 경우 부임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상당할뿐더러 선수들의 개개인 역량과 스타일을 파악하는데도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 부족한 시간 속에 만일 외국인 감독과의 협상이 끝내 결렬된다면 축구협회로서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아시안컵이 아니더라도 외국인 감독 선임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국인 명장들은 많은 몸값을 요구한다. 국가 대표팀 감독들의 연봉은 유명 축구클럽들의 비하면 현저하게 낮다. 게다가 그들의 몸값 뿐만 아니라 스태프를 포함해 주택비나 항공기 티켓 비용까지 모두 부담해야한다. 앞서 두 전임 감독의 연봉만 놓고 봐도 슈틸리케 감독이 16억원(추정)으로 신 감독(5억6000만원)의 거의 세배 가량이다. 심지어 슈틸리케는 감독으로서 커리어에 그다지 큰 족적을 남긴 인물도 아니다.

일본 축구협회가 비교적 우수한 외국인 감독들을 데려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전임 감독들인 바히드 할릴호지치에게 연봉 25억원을, 알베르토 자케로니에게도 그와 비슷한 수준인 28억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영입에 성공했다. 중국 역시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우수한 감독들을 끌어 모은다.

금전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냉정하게 외국인 명장들이 한국행을 택할 이유도 없다. 세계 축구계의 변방인 곳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감독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 달려올리도 만무하다.

축구협회는 9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하여 최근 스콜라리, 할릴호지치 등 전혀 접촉하지 않은 감독들에 대한 루머가 외신을 통해 국내 언론에 기사화되고 있다”며 접촉설을 부인했다. 더불어 감독 후보자들과 원활한 협의를 이유로 최종 감독 선임을 발표하기 전까지 외신발 루머성 뉴스의 자제를 부탁했다.

김판곤 감독 선임위원회 위원장은 앞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축구,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를 한국 축구의 철학으로 삼고 이러한 축구를 구현할 지도자를 찾겠다고 공언했다. 명성보다는 능력을 우선시 할 것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외국인 감독 선임에 따른 제약 또한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장이 5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 팬들은 외국인 감독만을 바라고 있다. 거론됐던 외국인 감독 명단 역시 수두룩하다. 히딩크 감독의 복귀설부터 루이스 반할과 루이스 스콜라리, 바히드 할릴호지치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장들이다.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간 이어져온 협회의 ‘인맥축구’에 대한 분노와 싫증이다. 외국인 감독은 축구협회를 비롯한 외부의 주문이나 압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 역시 비난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 만큼 국내파 감독의 선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선임위원회는 외국인이나 내국인으로 선을 긋지 않고 최대한 적합한 후보를 찾겠다고 공언했으나 그간의 행보를 봐왔을 때 차기 감독은 외국인으로 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감독 선임위는 10명 정도의 외국인 사령탑 후보 리스트를 준비해 신 감독과 이들의 능력을 면밀하게 비교 판단해 3명의 우선협상 대상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축구협회가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를 가동해 신임 A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뚜렷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 파악한 감독 후보군들의 현 상황을 점검하는 선에서 업무가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9월 있을 A매치가 축구협회가 정한 감독 선임의 데드라인이다. 아시안컵이라는 또 다른 도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전 국민의 시선이 한국 축구의 장기 플랜을 짊어질 차기 감독에게 집중되고 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