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완 교수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란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랍계가 아니다. 페르시아계 사람들이다. 언어도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고 페르시아어를 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들은 수니파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이란 국민의 90%는 시아파 무슬림이다.
1979년 이란에서 부패한 친미 독재정권 팔레비 왕가가 무너지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였다. 이후 이란은 철저한 시아파 이슬람국가가 되었다.
당시 이란과 인접한 이라크 국민의 대다수는 시아파였다. 수니파는 국민 3분의1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니파 출신의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잡았다.
걸프만의 친미 왕정국가들과 더불어 이라크도 시아파 무슬림의 나라,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인근 중동 국가들로 퍼질까 봐 매우 경계하였다. 미국과 서방국가들도 은근히 이라크를 지원했다.
결국 이란과 이라크는 오랜 기간 갈등을 빚은 ‘샤트알아랍’ 강의 수로 지배권을 놓고 8년 간 전쟁을 벌인다.
독재정권을 끝장내고 온전한 이슬람주의로 똘똘 뭉친 이란 국민들의 저항은 엄청나서 미국과 인근 아랍 왕정국가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8년이나 끌었다.
이 전쟁 후 군사대국이 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후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것을 기점으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이란은 이라크와의 오랜 전쟁과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국가 정체성을 아직도 잘 지키고 있다.
이란의 국가 최고 수반은 종교지도자 이맘이지만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한다. 종교지도자가 일일이 현실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즉 이란은 이슬람민주주의라고 할 만한 정치권력 구조를 바탕으로 이슬람주의에 기초한 이란만의 독특한 합리적 정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도 중동 국가들 중에선 활발한 편이다. 국토도 넓고 인구도 8000만 명 이상의 대국이다. 그러므로 걸프만의 수니파 왕정국가들에게 이란의 역내 세력 확장은 재앙이나 다름없게 받아들여진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나라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집트는 무슬림형제단이라는 정파가 정권을 잡았으나 이내 다시 친미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시리아는 사분오열되어 내전 중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미국의 911 테러 후에 이미 몰락하였다. 그러므로 미국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현재 가장 국가적 위협이 되는 것은 이란의 핵 개발과 미사일 뿐이다. 그리고 자고로 미국의 중동 정책은 일관되게 친이스라엘, 반이란 정책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난 오바마 정권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 청소적으로 보일만한 강경정책을 밀어부쳐 전 세계적으로 공분을 일으키자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대신 이란에 대해 유화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이란과 서방 국가들 사이에 핵 협정이 체결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도 풀리게 됐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과 궤를 달리 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는 와교노선을 다시 전통적인 친이스라엘 반이란 쪽으로 급선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이 현재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를 끝내고 강력한 개입에 이어 적극적인 대화를 시작한 것도 중동과 극동을 아우르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렇다고 수십 년 간의 경제 제재도 견디어 온 이란의 정권이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만, 현재 수십 년 간의 경제 제재로 인해 이란 국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세계 경제는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가 지배한다. 지구촌은 이미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국가가 자급자족 경제로 버티고 유지할 수가 없다.
이란의 사회간접자본은 너무 노후되어 이미 그 수명이 다했다. 석유 관련 산업 시설들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성직자를 보호하고 정권을 지탱하는 혁명수비대도 오랜 기간 동안 권력을 쥐다 보니 부패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생활고에 찌든 이란 국민들은 고된 삶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에 거리로 뛰쳐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어떤 정부건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자존심 강한 이란이 미국에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할 것인가? 결국 다시 세계 경제 체제에서 제외된 채로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 나갈 것인가? 과연 이란은 어느 노선을 선택하게 될까? 그 선택에 따라 중동의 미래가 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선완 교수는
1981년 연세의대 입학하여 격동의 80년대를 대학에서 보내고 1987년 연세의대를 졸업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레지턴트를 마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후 건양대학병원 신설 초기부터 10년 간 근무한 후 인천성모병원을 거쳐 가톨릭관동대학 국제성모병원 개원에 크게 기여했다. 지역사회 정신보건과 중독정신의학이 그의 전공 분야이다. 최근 특이하게 2년 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을 위해 애쓰다가 귀국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