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예멘 난민 문제와 관련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난민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63만여명이 참여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문재인 대통령도 예멘 난민문제에 대해 보고 받으셨을 것”이라며 “다만 별도로 회의를 주재하거나 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입장은 내지 않을 예정”이라며 “법무부의 대책발표로 갈음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난민법을 개정하고 난민심판원을 신설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난민 자격을 신청한 486명의 예멘인에 대한 심사를 늦어도 오는 10월까지 마치고, 난민심판원을 신설해 난민 신청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를 축소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이번 문제에 대한 현황 파악을 지시했다. 청와대는 같은 날 예멘 입국자들에 대해 취업지원, 인도적 지원, 범죄예방 세 가지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주 동안 청와대는 난민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여론 동향을 좀더 주시하고 입장을 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가 침묵하면서 야당의 공세는 거세지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6일 문 대통령을 향해 “(해외) 순방 전에 예멘 난민 문제는 답을 주고 가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제주도에 들어 온 549명의 예멘 난민 문제는 향후 우리나라 난민 정책의 기본 방향을 가늠한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대통령이 찬성도 반대도 아닌 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사회적 우려와 갈등만 더 증폭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예멘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제주까지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예멘에선 2015년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세력 간 내전이 벌어지면서 약 19만명이 해외로 탈출했다. 이들 대부분이 말레이시아로 향했다가 체류 기간인 90일이 지나자 쿠알라룸푸르∼제주 직항 노선을 타고 제주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예멘 입국자가 늘어나자 법무부와 제주도는 지난달 부터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무사증 입국 허가국’에서 예멘을 제외했다. 이에 따라 기존 입국자 500여명 외에 더 이상 예멘 난민이 제주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다.
난민 반대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을 계기로 관련 규제를 강화해달라(난민법 개정)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6일 현재 역대 최다 참여인원인 63만명의 추천을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준비되는 대로 답변을 할 건데, 난민 이슈는 아직이다”라며 “청원 답변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게시 30일 이내, 20만 건 이상의 추천을 받은 국민청원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마감일 기준으로 한 달 내에 답변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 국적 난민 신청자들을 상담한 결과 ‘취업을 통한 생계 안정’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혔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달 29~30일 제주도 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의 인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 순회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 결과 144명의 난민 신청자 모두가 생계 안정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라고 꼽았다. 이 밖에 총상 후유증, 당뇨 등에 대한 의료 지원(32건), 임금체불 관련 상담(12건)도 접수됐다. 인권위는 “향후 2~3개월 난민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중앙정부와 제주도가 이들에 대한 긴급 생활지원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