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가 5일 내놓은 A4 용지 3장 분량의 보도자료 제목은 ‘기무사, 고강도 개혁 통해 보안·방첩 전문기관으로 혁신’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무사의 부대 정신인 ‘절대 충성’ 개념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특히 기무사는 “시대상황에 맞게 방첩활동 패러다임을 ‘대공’ 중심에서 ‘외국 스파이 차단’으로 조정했다”며 “과학센터를 증편해 과학적이고 합법적 수사역량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남파 간첩을 잡는 수준을 뛰어넘어 외국 스파이들의 불법 정보 수집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말이다. 기무사는 보안·방첩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동보안팀을 기존 5개팀에서 30개팀으로 확대했다.
기무사는 민간 변호사가 포함된 인권보호센터도 신설했다고 밝혔다. 또 “전군 최초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인권위원회’를 설치해 상시감시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면 시스템이 또 이상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내부에 인권보호센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사령관은 “(부당한 임무를 수행할 경우) 부대원 본인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며 “그런 임무를 받게 되면 시스템적으로 보고를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무부대원이 만약 부당한 지시를 받게 되면 스스로 이를 거부하고 신고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신고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취지다.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군인공제회와 국방연구원(KIDA) 내 기무부대원을 철수시키고 지역 기무부대를 향토사단의 지원부대로 개편할 예정이다. 군 신원조사 업무는 장군 진급 및 주요 보직 예정자에 한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장병 사생활에 대한 정보 수집은 철저히 금지할 계획이다.
이런 기무사의 ‘셀프 개혁안’은 사실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보수정권 시절 댓글공작 활동뿐 아니라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대한 동향 파악 등 민간인 사찰 업무에까지 손을 댄 정황이 드러난 만큼 스스로 고강도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진보진영에선 이미 기무사 해체 요구까지 나온 상태다.
또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 일환으로 기무사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국방부는 기무사 자체 개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위원회’를 구성해 기무사의 명칭과 조직, 규모 등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무사 조직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의 조사결과 발표는 기무사 개혁에 힘을 싣는 결과를 낳았다. 조사결과는 기무사가 세월호 관련 TF를 약 6개월간 운용하며 민간인 사찰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전남 진도의 팽목항뿐 아니라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에 요원을 배치해 일일보고를 하도록 한 정황이 드러났다.
기무사는 또 진보단체의 집회 일시, 장소, 참가 인원 등 정보를 보수단체에 여러 차례 제공한 사실도 확인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찰 정보를 보수단체에 제공하고, 이들이 유가족의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고 국민 여론을 호도한 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국기 문란”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기무사의 세월호 TF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다. 민간 검찰 수사도 이미 착수된 상황이다. 이 사령관은 이와 관련해 “만약 위법한 행위가 있으면 명확하게 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 일각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기무사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추진 중인데 그런 진정성은 왜 몰라주느냐”는 말이다. 기무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5·18특조위)’에 전문 조사관을 파견해 적극 조사에 동참했으며 미발굴 자료 3만7000여건을 제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헬기 총기사격 진상규명 및 5·18 특별법 제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했다. 이어 ‘댓글사건 수사에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2000여건의 자료를 사전 발굴하여 제출하고, 국방부 댓글조사TF 발족 이후에도 문건을 추가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부 군 관계자는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국정원과 경찰 등 정보기관이 정보활동에 총동원됐는데 왜 기무사에만 화살을 돌리느냐”고 주장한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위법한 민간인 정보수집과 정치개입 활동에 대한 변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기무사 TF에 투입된 60명 중 대부분은 현재까지 현역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이들 중에는 승진해 장성으로 있는 기무사 간부도 있다. 제 살 깎는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이번에 확실한 정치적 중립 장치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기무사는 더 가혹하게 여겨지는 개혁 요구에 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논의를 통해 기무사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법을 만드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여야간 접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