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남길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아마 펜을 꺼내들고 벽까지 걸어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낙서를 남겼을 것이다. 이런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남긴 낙서이기에 특별한 ‘팬심’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서울 잠실구장 중앙문 인근 기둥과 벽 등에 “두산 찐x” “두산의 구장은 원래 대전에 있다” “싸인 좀 해줘라” 등의 낙서들이 발견됐다.
◇ “두산 잠실구장에서 나가라”
“두산 잠실구장에서 나가라”는 기둥 낙서에는 오래된 사연이 있다.
현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모두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KBO 리그 팀으로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쓴다.
두산베어스의 전신인 OB 베어스는 본래 대전·충청을 연고지로 했다. 두산그룹 사주의 거주지가 종로구였기 때문에 창립당시 서울을 연고로 둘 생각이었으나, MBC 청룡이 서울을 선점하게 되자 “대전을 맡을 테니 3년 뒤 서울입성을 허가 해달라”고 KBO 측에 요청했다. 그 결과 두산 베어스는 MBC 청룡의 뒤를 이은 LG 트위스와 같이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하게 됐다.
두 팀이 잠실구장에서 맞붙을 때면 홈팀좌석이 바뀐다. 홈팀좌석은 1루 쪽, 원정좌석은 3루 쪽에 있기 때문에 두 팀이 잠실구장에서 맞대결을 하게 되면 팬들은 항상 어느 쪽이 홈팀 경기인지를 확인하고 좌석을 예매해야 된다.
이렇듯 같은 연고지에 홈구장을 공유하는 ‘한 지붕 두 가족’의 맞대결은 항상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 “사인 좀 해줘!”
벽에 적힌 “사인 좀 해줘”라는 낙서도 눈에 띄었다. 좋아하는 선수의 사인을 못 받아 실망한 나머지 벽에 본인의 심정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잠실구장에는 경기 시작 전후로 선수들의 사인을 받으려는 야구팬들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과 스케줄 등의 문제로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지는 못한다.
이에 야구팬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선수들의 행동패턴이나 성향을 분석하기도 한다. 홈구장에서 경기를 하는 팀 선수들은 보통 경기장에 개별적으로 오기 때문에 경기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 다르다. 또한 인터뷰, 구단 행사가 끝난 뒤 샤워를 하는 경우가 많아 선수마다 경기장에서 나오는 시간이 다르다. 따라서 사인을 받고 싶은 팬들은 특정 선수의 사인을 받았던 사람들의 ‘후기’를 읽고 노하우를 전수 받는다.
지난 5월 22일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후기에는 사인을 받기 위한 노하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글쓴이는 “홈팀 선수는 4시간 30분 전에 출근을 합니다” “선수 호칭은 오빠 혹은 형님이라 하면 사인을 더 잘 해줍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좀 빠릿빠릿하게 해야 됩니다” “선수가 좋아할 만한 최근 경기에 활약을 말해도 좋습니다” 등의 팁을 소개했다.
박태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