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경북 포항의 한 약국에서 일하던 30대 여성 A씨는 갑자기 침입한 4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복부를 다친 A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15일 오전 끝내 숨졌다. 당시 함께 약국에서 근무하던 약사도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범행 동기를 추궁하자 “2~3년 전에 약사가 먼저 욕을 했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가 A씨와 약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설명했고, 과거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다고 밝혔다.
◆ 범죄자들의 감형 가능성, 왜?… “정신질환·정신과 진료 이력 때문”
일각에서는 B씨의 정신과 치료 이력 때문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신병 이력을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2016년 강남역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정신질환 중 하나인 조현병 환자였다. 당시 범인은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고 잔인한 범행 수법과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심신미약이 인정돼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여론은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을 받았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지난해 벌어진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의 피의자도 정신병을 위장해 감형 받으려던 정황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피의자 A양 측은 “자폐성 장애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아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며 계획범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무래도 최대한 형을 감형 받으려고 하는 노림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조현병이냐 아니면 다중인격장애냐, 해리성 인격 장애냐’하는 얘기가 나왔다. 지금 이 상황에서 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심신미약을 주장함으로써 재판관이 이를 인용하는 것이다. 변호인과 부모의 판단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 “포항 칼부림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떠올라”
일부에선 정신 질환을 이유로 감형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며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했다. 그중에는 ‘포항 칼부림’ 사건과 관련된 청원도 있었는데 청원자는 지난 15일 “포항 약사 칼부림 사건 가해 남성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해주십시오”라는 글을 게재했다. 3일 오후 현재 해당 청원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동참했다.
청원자는 “한 남성이 약국에 들어와 무고한 약사와 종업원을 위협하고 흉기로 수차례 찌른 사건이 있었다. 지방선거의 이슈에 밀려 이 악랄함이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다”며 “가해 남성은 과거 정신과 치료기록을 이유로 감형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사건을 보자니 몇 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이 떠오른다”고 적었다. 이번 사건을‘묻지마 살인’이 아닌 ‘여성혐오 범죄’ 성격도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의 자료에 따르면 살인·강도·절도·폭력 등 4대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가 매년 늘고 있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는 2만 명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재범률도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신병 이력 악용에 대해서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감형은 여전히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형법 제10조 제 1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 2항에도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 강력 범죄 사건과 정신질환의 연관성은?
묻지마 폭행·살인 등 잇따른 강력 사건과 정신질환은 얼마만큼 연관성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실 정신질환 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일반인들에 비해선 적다”고 설명한다. 소민아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과 전문의는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효과적 재범방지 방안’ 세미나에서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때문에 ‘정신질환자는 일반인보다 범죄 위험성이 높다’는 오해가 생겼다”며 “그러나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과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낮다”고 설명했다.
노민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조현병은 생각만큼 범죄와 연관이 된다거나 폭력의 위험성이 높은 병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지만, 조현병을 앓는다고 해서 무조건 폭력적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신질환 중에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 등 공격성과 범죄를 일삼는 질환은 따로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율이나 폭력성은 아주 낮은 편에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범행에 이유가 없고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정신질환 의료수가는 평균 진료비의 60% 수준에 불과하지만, 의사 1명당 돌봐야 할 환자 수는 일반 병원의 3배에 달한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상황에서 어렵게 치료를 시작한다 해도 만족스럽거나 꾸준한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도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서울의 경우 1인당 많게는 260명을 관리해야 하는 등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