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의 일환으로 시 '괴물'을 발표한 최영미(57) 시인이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미투 운동이 더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시인은 3일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상하고 이어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존재했던 악습은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당분간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니 미투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보수적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시 한 편으로 시끄러워졌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가 변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한국 사회가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자찬했다.
지난해 12월에 등장한 '괴물'은 원로 시인 고은 씨의 상습적 성추행을 폭로한 시다. 지난해 9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세 편의 시 중 하나로, 당시는 미국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는 "'괴물'을 썼을 때는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괴물'은 올해 2월부터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국내 미투 운동 '촉매제'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 시인은 "너무 늦게 써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시를 썼다"면서 "10년 전에 써서 (문단 성폭력 문제를) 청소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등단할 무렵에는 여성 시인을 기인 취급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조금 나아졌겠지만, 아직 '괴물 주니어'들이 넘쳐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추가 폭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괴물과 싸운 것만 해도 힘에 부친다"며 "2월 언론 인터뷰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다 열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은 경고성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여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성추행과 성폭력을 묵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됐기 때문에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필요는 없다"며 "반성해야 할 분들은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문단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성평등을 이루려면 대부분이 남성인 문학상 심사위원을 여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문화예술계 권력을 고르게 나눠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고은 시인의 시를 굳이 교과서에서 뺄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빼든 안 빼든 살아남을 거라고도 했다.
최 시인은 올해 하반기 SNS에 쓴 글을 모아 산문집을 한 권 낼 예정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