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할 때도 휴대폰 소지” 김지은씨가 받은 ‘안희정 보좌 매뉴얼’

입력 2018-07-03 16:37 수정 2018-07-03 17:38
수행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첫 재판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이 공개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업무 매뉴얼’은 온갖 지시사항으로 가득했다. 도지사를 위해 늘 준비해야 하는 비품목록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목욕할 때 휴대폰을 소지하는 방법까지 안내하고 있었다. 정무비서였던 김지은(33)씨는 늘 안 전 지사의 심기를 살펴야 했다고 한다. 업무 분위기는 매우 수직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지사의 1차 공판은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2일 열렸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고, 안 전 지사 측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적 태도”라고 일갈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부터 약 7개월간 김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번에 걸쳐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업무 지침에 따르면 김씨는 24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소지해야 했다. 화장실에 가거나 목욕할 때도 투명비닐에 담아 지녀야 했고, 개인 약속은 되도록 잡지 말아야 했다. 도지사의 담배, 라이터, 명함, 필기구 등을 항상 휴대해야 한다는 규칙도 있었다. 로션, 물티슈, 빗 등은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라고 지침에 적혀있었다.


검찰은 안 전 지사가 간단한 심부름을 시켜 김씨를 부른 뒤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스위스 출장지 또는 서울 숙소로 김씨를 불러 “나를 안게” 등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여러 번 거절의사를 나타냈음에도 성폭행·성추행이 계속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안 전 지사는 KTX 열차 내부나 관용 차량 등에서도 김씨를 강제 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김씨가 자신의 상관인 안 전 지사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무 분위기가 권위적이었음을 입증할 참고인 진술조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씨가 전임자로부터 업무 인계를 받으며 “모두가 노(No)라고 할 때 수행비서는 예스(Yes)라고 말해야 한다” “도지사의 기분을 거슬리면 안 된다” 등의 당부를 들었다는 내용도 공소사실에 적시했다.

김씨는 이번 재판을 방청석 좌측 맨 앞줄에 앉아 모두 지켜봤다. 김씨가 검찰에 모든 공판을 방청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검찰은 김씨의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전면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절차참여권을 보장하되 증인지원관 등을 통해 배려하겠다”며 부분적 비공개를 선언했다. 김씨는 공판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재판부를 응시하다 가끔 고개를 숙여 메모했고, 안 전 지사는 대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상대를 쳐다보지 않았다.

안 전 지사 변호인 측은 “행동(성관계 및 신체를 만진 행위) 자체는 있었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해 행한 것이 아니다”라며 “위력의 존재와 행사가 없었고 설령 위력이 있었다고 해도 성관계와 인과관계가 없으며 범의도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16일까지 총 7회의 집중심리를 거쳐 8월 전에 1심을 선고할 방침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