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피의자들을 포박한 채 거리를 걷게 해 공개망신을 줬던 필리핀의 한 소도시 시장이 총에 맞아 숨졌다.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이견으로 시장과 사이가 좋지 않던 두테르테 대통령은 시장이 마약에 연루돼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북부 바탕가스 주의 소도시 타나우안시 시장인 안토니오 할릴리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고 CNN, 필리핀스타 등이 2일 보도했다. 할릴리 시장은 시청 공무원 수십 명과 함께 시청 앞에서 국기 게양식을 하던 중에 가슴에 총을 맞았다. 그는 곧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약 한 시간 후에 사망했다.
CNN 필리핀은 경찰이 이 사건과 ‘부끄러운 행진(Walk of Shame)’과의 관련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할릴리 시장은 2016년 마약 피의자들을 포박해 타나우안 시내를 걷게하며 망신을줬다. 이 일로 ‘바탕가스의 두테르테’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마약상들에게 살해협박도 받아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할릴리 시장이 마약피의자와 연루돼 살해당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다. 이날 한 행사장에 참석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할릴리는 마약피의자들에게 부끄러운 행진을 하게 만듦으로써 그들을 수치스러워하는 척 했지만 사실 그도 마약에 연루돼 있었다”며 “할릴리가 마약에 빠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곧 바로 발언을 철회하고 “그저 내 의심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파장은 커지는 모양새다. 할릴리 시장은 생전에 두테르테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할릴리 시장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후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경찰이 사살한 마약 용의자 대부분이 빈곤층인 점을 문제삼아왔다.
한편 바탕가스 지역 경찰은 도시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마을을 샅샅이 뒤졌지만 저격범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