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을 보면 갑갑해 보일 정도로 작은 교복을 입고 다닌다. 어른들은 “교복을 왜 이렇게 줄여 입냐” “이게 요즘 유행이냐” “학생이면 학생답게 단정하게 옷을 입어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교복이 작게 나오는 거라면 어떨까? 3년 전 한 교복 업체 광고에서는 여학생들의 몸매를 강조하며 교복을 ‘코르셋처럼 조여라’라는 문구를 사용해 대중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여학생의 교복은 처음부터 몸에 딱 맞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 팔을 드는 것도 힘들고 비침도 심하다.
“처음부터 작게나오는 여학생 교복을 바꿔주세요!”
특히 여름 무더위가 본격화되면서 하복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아침 일찍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면서 하루 종일 불편한 교복을 입고 있을 때도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불편한 교복 대신 생활복&체육복으로 대체해주세요’ ‘여학생 교복을 바꿔주세요’ ‘여중고생의 교복 사이즈를 활동하기 편하게 수정해주세요’ 등 수십 개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그 외에도 교복을 성별에 따라 나누지 말아 달라거나 여학생들도 반바지를 입게 해달라는 청원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한 청원글에서는 “여학생 하복이 불편해 상의만이라도 남자 교복을 입게 해달라고 했더니 ‘치마 줄여 입지나 마라’ ‘학생답게 공부나 해라’면서 면박을 줬다. 학생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건의인데도 말이다”고 적었다. 이어 “윗세대 어른들은 교복을 줄여 입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처음부터 작게 나온다. 특히 하복 상의는 정사이즈로 사도 7세 아동복 사이즈에, 소재는 비치고 팔도 못 굽힐 정도다. 길이는 크롭티 수준에 여학생 교복에만 있는 허리라인은 코르셋처럼 불편하기만 하다”고 설명했다.
초등성평등연구회의 민화 교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왜 이렇게 교복을 작게 불편하게 만드냐’는 질문에 “아이돌의 무대 의상을 보면 교복을 연상시키는 복장이 굉장히 많다. 아마도 그런 게 맞물리면서 교복이라는 것이 패션이나 꾸밈 의상의 한 종류로 평가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교복을 판매하는 분들도 여기에 편승하면서 광고를 할 때도 ‘짧고 예쁘게 보일 수 있다. 날씬하게 보일 수 있다’ 등의 부분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교복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바 있다.
책상 가리개, “인권·건강 지켜줘” VS “본질적인 문제해결 아냐”
최근 중고등학교에서는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편안한 자세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책상 앞가리개’를 설치하고 있다. 책상 앞가리개는 가로·세로 1m 크기의 플라스틱 혹은 천 재질로 만든 판을 책상 앞쪽에 덧대는 것이다. 치마를 입은 학생이 이성 동급생 등의 시선을 의식해 불편한 자세로 수업을 듣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설치됐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의 건강한 학습권과 인권 신장을 위해 책상 앞가리개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학생들은 책상 앞가리개를 반겼다. 한 여학생은 “치마 교복 차림일 때 속바지를 입지만 의자에 앉아 다리를 모으고 수업을 들으면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다. 겨울에는 옷으로 덮을 수 있지만 여름에는 그럴 수 없어 힘들었는데 앞가리개가 생겨 정말 편하다”고 전했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책상 앞가리개를 설치하고 나니 교실 분위기가 단정해졌다. 아이들도 수업시간에 표정이 편안해진 것 같고 교사들도 민망할 일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비판적인 의견도 있었다. 자신을 교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책상 앞가리개 덕분에 교실 분위기가 단정해졌다는 건 도대체 뭔가? 초등학교에서는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친구들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히려 헐렁하고 편안한 옷이 단정하다고 한다. 그런데 교복을 입으면 단정하다는 기준이 바뀐다. 단정하다는 것 자체가 어른들이 보기 좋은 모습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편안한 복장을 입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애초부터 편안한 반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한다면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학생 치마, 여학생 바지 OK”… 교복 공식 깨는 학교들
그렇다면 교복을 입는 또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까?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는 2016년부터 성별에 따른 교복을 폐지했다. 이런 추세는 여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치마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전통적이고 구시대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영국 같은 경우에는 120개의 초등학교가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교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 남동부 이스트 서섹스의 중학교 등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교복 스커트를 금지하고 남녀 모두 바지를 입도록 했다.
여학생들에게 세일러복 교복을 전통적으로 입혀온 일본도 바뀌고 있다. 지난 4월에 개교한 지바현 가시와시에 있는 가시와 시립중학교는 남녀 구분 없이 학생 스스로 바지와 스커트 교복을 골라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의 교복은 그동안 스탠드칼라(목둘레 깃이 세워진 형태)의 긴 상의와 느슨한 바지의 남학생복과 세일러풍 여학생복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가시와중학교는 입학 예정인 학생 및 학부모 등이 참여한 검토위원회에서 남녀 차별 없는 교복을 도입하기로 했다. 남학생이 치마를 입어도 되고, 여학생이 바지를 입어도 된다. 상의 역시 남녀가 똑같은 재킷으로 허리 라인이 들어가지 않은 디자인이다.
한국에서도 학생·학부모 의견을 반영해 교복을 간편하게 바꾸거나 아예 없애는 학교가 늘고 있다. 서울 내곡중, 문성중, 한강중은 여름 교복을 간편하게 바꿨다. 광주 송광중, 부산 동백중, 울산생활과학고 등에서도 남녀 구분 없이 티셔츠와 반바지로 이뤄진 여름 교복을 입게 하고 있다. 일상 속 성차별을 인지하고 개선하자는 인식이 부쩍 확산되면서 교복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