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명 가량의 예멘인이 체류하고 있는 제주도 내 갈등이 다른 곳으로도 번지고 있다. 예멘인들이 현실적으로 제주에 체류하고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지만, 제주 주민들을 비롯한 국내 여론은 ‘예멘인 입국 반대’가 우세해 “빨리 나가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은 총 561명이며 이 가운데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이들은 예멘 내 종교갈등(수니파·시아파 갈등)을 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42명이 난민신청을 했다. 올해 들어 신청이 급증한 것이다. 정부는 급증한 예멘 입국자에 대해 취업 지원·인도적 지원·범죄 예방의 세 가지 조치를 병행하겠다고 밝히고, 예멘인들에게 농사와 축산 관련한 취업 허가를 내주는 한편 식자재 제공과 무료 의료 지원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지난달 20일 발표했다.
일부 사업장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예멘인들을 고용했지만, 일을 그만두는 예멘인이 속출하고 있다. 예멘인들은 제주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예멘인 중 일부(3명)는 제주출입국과 외국인청장을 상대로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헌성이 있다’며 체류허가지역 제한 처분(제주도에서 나갈 수 없게 하는 조치)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섬에서 나가 서울에서 취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했다. 제주에서 취업한 예멘인들은 ‘취업한 곳의 월급이 너무 적다’ ‘취업한 사업장의 업무내용(배를 타는 일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업주들이 고용을 꺼리고 있다’며 출도 제한 해제를 호소하고 있다. 예멘인 취업만 ‘처리’했을 뿐 사후 관리는 나몰라라 하는 당국 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국내 ‘예멘인 입국 반대’ 여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경찰 추산 700여명의 인원이 모여 ‘난민 반대 집회’를 열었다. 반면 같은날 ‘난민 반대 반대 집회’에는 경찰 추산 70여명의 인원이 모였다. 같은날 ‘예멘인 수용’을 두고 정반대인 집회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반대 시위 현장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웠다. 입국 찬성자들이 인도주의적 입장을 주지하는 반면, 입국 반대자들은 여러 사례를 들어 자신의 논리를 펴 나갔다. 이들은 ‘타 문화에 대한 관용이 적은 무슬림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 ‘기존 난민법을 강화해 국내 문화에 동화할 수 있는 진짜 난민만 받아들여야 한다’ ‘가짜 난민은 추방하고 무사증 제도(비자 없이도 30일간 국내에 체류를 허가하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NS상의 ‘난민 브로커’들을 통해 ‘가짜 난민’들이 입국했다는 것이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한 남성은 “난민이 아닌 사람이 국내에 돈 벌려고 들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피난처인 제주도에서의 처우에 대해 그들(예멘인)이 불평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가짜 난민’에 대한 지적은 여러 차례 이뤄져왔다. 인터넷에서 발견된 ‘난민 브로커’로 추정되는 SNS 계정에는 ‘제주도 입국 후 25일간 버텨 난민 카드를 받으면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가서 일할수 있다’ ‘난민 카드를 받으려면 비행기 표 값, 숙소 예약, 카드발급 비용 등을 브로커에게 내야 한다’는 내용이 게시돼있었다. 일부 계정은 지금까지도 활동을 지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입국한 예멘인들 다수가 비교적 젊은 남성이며, 짧은 시간 내에 대거 난민 신청을 했다는 점도 ‘가짜 난민’ 의혹을 더했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경찰청이 발표한 ‘국제범죄 집중단속 결과’에서는 총 387건이 적발된 국제범죄 중 가장 흔한 유형이 불법 입·출국(49%)인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는 한국인이 49.5%, 외국인이 50.5%였는데, 한국인 대다수는 외국인들의 불법 입·출국을 돕는 ‘난민 브로커’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단속 결과 무사증 제도를 운영하는 제주도는 불법 입·출국자들이 맨 처음 거치는 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도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뒤 몰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브로커’들은 입국을 희망하는 외국인을 유령회사를 세우거나 SNS에 게시하는 등의 경로를 통해 모은 뒤 제주도에 무사증 제도를 이용해 입국시켰다. 이후 불법 입국한 외국인들 중 일부는 서울·인천·여수 등으로 무단이탈했다.
최근 진행된 여론조사 역시 반대 측 의견의 강도가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달 21일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조사한 여론조사(표본오차범위 ±4.4%)에 따르면 예멘 난민 수용 찬성이 39%, 반대가 49.1%로 나타났다. 리얼미터는 “최근 내전을 피해 제주로 온 예멘 난민의 수용 여부를 두고 한편에서는 문화적 이질감이나 안전 문제로 반대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사회의 책임이나 인도주의 차원에서 찬성하는 입장인데요”라고 찬성 여부를 전국 남녀 500명에게 물었다. 이들의 수용 반대 의견은 수용 찬성 의견보다 10% 높았다. 매우 찬성한다는 의견은 8%였던 데 비해 매우 반대한다는 의견은 23.4%였다.
한편 법무부는 난민심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난민심사 담당자를 충원하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는 ‘가짜 난민’을 막기 위한 난민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난민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6명의 추가 직원을 투입하고, ‘난민심판원’을 신설해 난민신청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를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외 ‘국가정황 수집분석 전담팀’을 신설, 심사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김종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