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폐기된 것과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관여했는지를 밝혀달라고 공개 질의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차성안 판사(41·사법연수원 35기)는 최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디가우징(Degaussing·하드디스크 등 저장장치를 복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에 질의하는 글을 올렸다.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지난해 9월 22일 퇴임 한 달여 뒤인 10월 31일 디가우징됐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정이 나오기 사흘 전이었다. 박 전 처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지난해 6월 퇴임 당시 디가우징됐다.
차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디가우징이 이뤄진 지난해 10월말 무렵에는 이미 구체적으로 그 혐의가 드러나 있었고, 양 전 대법원장의 관여 여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나온 시점이었다”며 “왜 이런 중요한 정보가 그동안 추가조사나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에는 언급되지 않다가 이제서야 검찰에 자료를 제출하는 국면에서 언론보도를 통해 일선 법관들에게 전달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적했었다.
차 판사는 김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김소영 대법관의 관여 여부와 관여 수준에 대해서도 물었다.
차 판사는 “두 분께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결정 및 집행을 사전에 보고 받아 알고 계셨는지, 알고도 디가우징 처리를 용인한 경우 그것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조사에 미칠 영향이 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용인한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또 최근 10년간 역대 대법관들의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한 내역과 디가우징 후 하드 보관 이력,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퇴임 전후에 퇴임한 다른 대법관들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후 보관 여부 및 각 시기, 디가우징 근거 규정 혹은 관련 해석 등에 대해서도 질의했다.
차 판사는 “대법원장이든 법원행정처장이든 재판이 아닌 사법행정과 관련된 공문서 등 자료들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령과 규정에 따라 보관이 필요한 데이터를 다른 디스크로 옮겨 보관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공공기록물 관련 법령에 따라 공문서를 훼손한 것으로 증거인멸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등의 하드디스크 디가우징에 앞서 사법행정과 관련해 생성된 공문서 등 데이터 보존을 위한 복사 이전 조치가 이뤄 졌는지, 어떻게 보관 중인지,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