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장식용 돌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여성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61·여)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범행수법, 범행을 전후한 김씨의 행동 등 기록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범행이 심신장애의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원심의 조치는 수긍이 간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새벽 1시까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가, 연락도 없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며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리는 등 폭력을 행사한 남편을 장식용 돌로 10여 차례 내리쳐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의 변호인 측은 “혼인기간 내내 칼에 찔리고 가스통으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등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당한 김씨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방어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했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은 “머리를 가격당해 누워있는 남편의 머리를 다시 수회 돌로 내리쳤다”며 “김씨가 검찰 진술에서도 분노감만 표현했을 뿐 공포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사회통념상 정당방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범행 이전에 우울증 진단이나 약물치료를 받은 병력이 없고 주변 증언 등에 비춰 특별히 정신적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사건 직후 112신고나 출동 경찰에게 다르게 진술한 것은 사물변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심신 미약으로 보기 어렵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은 배심원 전원이 김씨를 유죄로 판단했으며,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또한 “남편의 머리를 돌로 십수회 가격해 살해한 것으로 범행수법이 매우 잔혹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참고 견뎌왔고 정신적·육체적으로 시달린 나머지 순간 흥분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1심의 형량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봐 1·2심이 선고한 징역 4년을 그대로 유지하자 김씨를 변호한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대표 이명숙 변호사)는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센터 측은 “사건의 경위, 동기, 심신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펴 정당방위나 심신미약, 심신상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호주 등 해외 입법사례처럼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가족 구성원이 가해자를 살해할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