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적함대 스페인의 패배, ‘점유율’과 ‘통계’의 허상…
중앙에서 빌드업 과정을 거쳐 주도권을 잡는 점유율 축구의 종주국격인 스페인이 탈락했다. 스페인은 1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16강 경기에서 연장 120분 동안 러시아와 1대1로 비긴 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수치상 기록만 놓고 보면 스페인의 일방적인 경기 양상이었다. 74%의 점유율 속에 무려 1137개의 패스를 해 1029개를 성공했다.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였지만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1000개가 넘는 패스가 나왔다. 패스 성공률 또한 91%에 이른다.
이렇게 압도적인 통계 수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결과는 스페인의 패배였다. 25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단 한 개도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상대 수비수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의 자책골이 터졌을 뿐이다.
◆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점유율 축구의 ‘흥망성쇠’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삼각편대를 앞세운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는 현대축구의 대명사로 꼽혔다. 유로2008, 2010남아공 월드컵, 유로2012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했다. 클럽 축구에서도 FC바르셀로나가 유럽을 지배했다.
스페인식 짧은 패스플레이를 뜻하는 ‘티키타카’(tiqui-taca)의 성공과 함께 모든 팀들은 볼 점유율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볼 점유율은 경기가 끝난 후 가장 먼저 확인해보는 지표가 됐다. 공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을 경기 흐름을 지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유율의 핵심인 패스 횟수와 성공률 역시 중요해졌다.
뿐만 아니라 점유율 축구는 미학적인 측면에서 역시 찬사를 받았다. 흔히들 ‘뻥축구’로 말하는 롱볼 축구보다 감탄할만한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승리와 아름다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스페인의 중원은 단연 이번 출전국 중 최강이다. 다비드 실바, 이니에스타, 코케, 부스케츠, 사울 니게즈, 티아고 알칸타라로 구성된 스페인 미드필더진을 상대로 점유율을 앞서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심지어 이들은 유럽 각국을 호령하는 빅클럽에 소속된 선수들로서 극단적인 수비일변도의 팀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왔던 베테랑들이다.
하지만 이들 조차도 ‘선수비 후역습’의 단단한 조직력 앞에 16강 탈락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 고개를 숙여야했다. 어쩌면 조별리그 내용만 살펴봐도 스페인의 탈락은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1승 2무의 성적표를 받아 조 1위로 진출하긴 했지만, 이란을 상대로는 행운의 골로 가까스로 거둔 1대0 신승이었고 모로코와 포르투갈 상대로 역시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가다 무승부를 기록했다. 기동력을 바탕으로 압박을 하는 팀과 신체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수비를 탄탄히 해 역습 한방을 노리는 팀 앞에 고전했다.
스페인뿐만이 아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들을 괴롭히며 이변을 일으킨 팀들은 철저하게 역습 축구를 구사했다. 신장이 높은 선수들을 수비에 배치해 제공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라인을 유지하고, 동시에 발 빠른 공격수들을 전방에 배치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역습으로 측면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점유율 축구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팀들은 강한 압박 수비와 빠른 역습에 고전했다.
토너먼트에 오면서 점유율 축구는 더 철저하게 몰락했다. 아르헨티나(60%)와 포르투갈(67%)모두 점유에서 앞섰지만 프랑스(40%)와 우루과이(33%)에게 패했다. 높은 수비라인은 발 빠른 상대 측면 공격수들에게 틈틈이 좋은 먹잇감이 됐다. 이들은 상대 위험 지역으로 공을 쉽게 투입하지 못한채로 공을 점유한 시간의 대부분을 외곽 지역에서 공을 돌리며 보냈다. 볼 점유율이 높으면 그 팀이 경기를 지배한 것으로 해석되는 시대가 지났다는 뜻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을 기점으로 스페인 황금세대는 끝이 났다. 이니에스타는 16강 탈락 직후 공식적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라모스와 피케, 부스케츠, 다비드 실바 역시 그 뒤를 이을 전망이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 뿐만 아니라 앞서 유로 2016과 2014브라질 월드컵 또한 조기 마감했다. 이쯤되면 변화없이 자신들의 축구를 고수했던 것이 아집과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 전술은 ‘돌고 돈다’… 다시 돌아올 티키타카
전술은 시간이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진화한다. 그리고 돌고 돈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형태의 전술이라고 평가받던 4-4-2 포메이션은 포백을 기본으로 하는 유기적인 다른 4선 계열에 밀려 한동안 전술적 주류에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중앙 밀집형태의 수비 강화가 더해진데다 수비라인의 지그재그 배치, 풀백과 인사이드 미드필더의 간격 조정 등으로 단점을 보완해 최근 다시 떠올랐다.
4-4-2가 그랬듯 점유율 축구가 현대축구에서 아직까지 유효함에는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상대보다 많은 공격기회를 가져간다는 것, 과거 요한 크루이프의 ‘토털 사커’ 개념에 따라 뒷공간을 활용할 여지와 체력적인 부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이점이다.
스페인 축구에 있어 티키타카 경기스타일은 그들에게 지난 세월 많은 승리와 업적을 가져다준 신념과도 같다. 스페인은 공을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점유하는지 보단 얼마나 효과적으로 점유하는지에 집중해 더 강해진 그들의 축구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