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시신을 빼돌리고 삼성그룹으로부터 6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산 아버지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위증 혐의를 시인하고 있고 위증교사 혐의와 관련한 향후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염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어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구속 사유와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검찰은 염씨가 2014년 8월 아들 고(故) 염호석씨 시신 탈취 의혹과 관련해 라두식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지회장의 재판에서 위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염씨는 4월 20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고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되자 도주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염씨를 긴급체포했지만 다시 풀려나게 됐다.
호석씨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으로 활동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삼성전자 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원이란 이유로 일감을 받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배후에 사건을 축소하려던 움직임이 있었다. 호석씨는 유서에 자신의 시신이 발견되면 가족이 아닌 동료들한테 장례절차를 맡기겠다고 적었지만 아버지가 돌연 시신을 빼돌렸다. 여기에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염씨는 아들 호석씨의 시신이 발견된 다음 날인 2014년 5월 18일 오전 최모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등과 만나 6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장례를 노동조합장(葬)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합의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호석씨의 시신은 이날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 안치됐지만 느닷없이 경찰 수백 명이 들이 닥쳤다. 동원된 경찰은 방패와 최루액으로 조문객들을 강하게 밀어붙인 뒤 시신을 가로채갔다.
공권력을 이용해 시신을 옮긴 사람은 다름 아닌 고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염씨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비밀스러운 거래에 대해 털어놨다.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에 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자신을 ‘양산센터 사장’이라고 소개한 그가 장례를 자신들한테 맡겨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거절하자 서울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염씨를 서울의 한 호텔로 데려갔다고 했다. 그 곳에서 삼성 본사의 최전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위로금으로 6억원을 주겠으니 장례를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그 돈을 받고 아들을 동료들의 손이 아닌 자신이 직접 장례를 진행했다고 했다.
검찰은 염씨가 삼성전자서비스와의 합의 이후 노조에 가족장을 치르겠다고 통보하고 경찰 3개 중대의 도움을 받아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옮긴 뒤 밀양에 있는 한 화장장에서 서둘러 화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에 가벽을 설치해 업무공간을 분리하거나 비조합원한테만 일감을 몰아줘 임금을 차이나게 하는 일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노조원이 많은 곳은 폐업까지 시켰다고 했다. 최근 다스 소송비를 삼성이 대납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던 중 6000건의 노조와해 문서가 발견됐는데, 이 모든 일이 삼성이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