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홍일병 사망사건을 토대로 군 병원과 군 의료체계의 부실함을 고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전·현직 군의관들은 의료기기라고는 청진기 하나 밖에 없는 데다 바늘이나 가위 같은 의료기기를 주방세제로 세척한다고 폭로해 충격을 줬다.
30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사선 위의 장병들’ 편에서는 복무 중 군 병원에서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이른 나이에 끝내 숨진 홍정기 일병의 사건을 중심으로 부실한 군 의료실태를 파헤쳤다.
방송에 따르면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는 군 생활 중인 아들이 군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는 행정보급관리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들이 있는 곳은 군 병원이 아닌 인근 대학병원이었고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 후 이틀 만에 홍 일병은 세상을 떠났다.
직접적이 사인은 뇌출혈과 다발성 장기 부전이었다. 사망 전 홍 일병은 구토와 어지럼증 증세를 호소했다. 홍 일병이 근무했던 부대 관계자는 “부대에서는 나름대로 병원지료 조치를 했는데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외상이나 그런 게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다 끝난 일이다”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제작진은 홍 일병에 대한 군 검찰의 수사 문건을 확보했다. 병사들의 진술에는 홍 일병의 몸에 큰 멍이 있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있었다. 구토 증세와 두통 증세도 심했지만 군 병원에서는 감기약만 처방했다. 결국 홍 일병은 국군 춘천병원에서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뇌출혈은 백혈병으로 인한 혈소판 수치가 낮아져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멍과 붉은 반점 역시 급성 백혈병이었기에 나타난 증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홍일병은 국군병원에 가기 전 의무대를 다섯 번이나 찾아갔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군검찰 수사기록을 살펴본 결과 홍 일병을 진료한 군의관들의 전공은 피부과와 정신과였다. 두드러기 약을 처방했던 피부과 전문의는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뭔지는 알았지만 접해본 적이 없었다”며 “내과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홍 일병에게 두통약을 처방했던 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의사가 자기 거쳐 간 환자가 잘못되길 바라겠나”라며 “정신과 전공의라 의사면허를 취득했지만 모든 분야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지 못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복무 중인 군의관 대부분은 전문의 자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전문의 자격을 갖고 있어도 임상 경험이 많지 않아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현직 군의관은 “내과 전문의인데 정형외과나 치과, 안과 진료까지 하고 있다”며 “치과라고 하면 치아를 잘 몰라 빨간 약이라고 말하는 진통제를 주거나 ‘치과 가봐라’하는 게 전부다. 양호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또 다른 군의관은 “책임을 뒤집어씌울 의료인이 필요한 거다. 심정지나 위중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군의관이 있었다는 거다”라며 스스로를 방패막이라고 여긴다고 토로했다. 현직 군의관은 “의무대는 청진기 하나로만 진료를 한다. 사단 의무대는 동네 의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전직 의무병이었던 한 전문의는 “우리 부대는 바늘, 가위 같은 거 주방세제로 씻고 자연 햇빛에 말렸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홍 일병은 연대 의무대 진료 후 혈액암 가능성이 있어 즉각적인 혈액 내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가 백혈병 확진 판정을 받았을때는 골든타임이 지난 후였고 혈액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자대로 복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의들은 “홍 일병이 군 의무대에서 혈액검사만 받았다면 백혈병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