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의 성 평등 인식에는 과연 문제가 없을까. 교실에서는 어떤 성차별적 언어표현이 사용되고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마주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충격적인 언어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일상에서의 성 고정관념과 차별은 아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성차별적 언어의 문제는 우리 사회 모든 쟁점과 맞닿아 있다. 특히 특정 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으로까지 파생되면서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더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1인 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접하기 때문에 인터넷방송인(BJ), 유튜버와 같은 개인방송 업로더 등으로부터 성차별적 언어표현을 쉽게 습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생들은 공공연하게 교실 안에서 ‘OO녀’ ‘맘충’ ‘꽃뱀’ ‘한남충’ ‘느금마(너희 어머니)’ ‘느개비(너희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들의 정확한 뜻조차 모르고 사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 성차별적 표현들, 교실을 점령하다
자신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A씨는 “3~4학년 아이들이 ‘메갈녀(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 이용자를 폄하해 부르는 말)’ ‘한남유충(남자아동을 비하하는 말)’ 등과 같은 혐오 표현을 사용하며 싸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니 ‘인터넷 영상에서 들었다. 우리끼리는 장난으로 많이 쓴다’고 답해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A씨는 “그런 못된 말을 왜 쓰냐고 나무라자 학생들은 ‘화가 나서 내가 아는 가장 심한 욕을 했다’며 반성했지만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따라 하면서 유행어처럼 자리 잡은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의 잘못된 언어 표현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명확한 지도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주의를 준다고 한들 어른들이 없을 때는 또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길이 없으니 난감하다”면서 “스마트폰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 역시 아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근본적으로는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성 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데, 학교 자체에서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 앞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 많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 “시댁·처가 호칭도 남녀차별… 바꿔주세요!”
한편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도 한 청원자가 언어 속 성차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해당 글에서 청원자는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을 청원한다. 여성이 결혼을 하고 난 뒤 시댁에서의 호칭은 대부분 ‘님’자가 들어간다. 심지어 남편의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과 남동생은 ‘아가씨’와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남성이 결혼 후 처가의 호칭은 ‘님’자가 없고 장모, 장인, 처제, 처형이라고 한다”면서 호칭의 근거로 한 포털사이트의 ‘한국생활가이드북 가족생활문화’ 정보 링크를 첨부하기도 했다.
청원자가 첨부한 2012년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의 누나, 여동생에게 ‘형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 데 비해 남편은 아내의 언니, 여동생에게 ‘처형’ ‘처제’라고 칭하면 된다. 아내는 남편 남동생에게 ‘도련님’ 또는 ‘서방님’이라고 해야 하지만 남편은 아내 남동생에게 ‘처남’이라고 말하면 된다. 도련님, 아가씨는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이다. 계속해서 청원자는 “이러한 호칭은 성 평등에도 어긋나고 여성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고쳐져야 한다”며 “수많은 며느리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며 나라가 나서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가부, 생활 속 성차별 언어표현 바로잡는다
이렇게 성차별적 언어가 사회갈등의 형태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대한 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라고 28일 밝혔다. 여가부는 우선 일상 속에서 어떤 성차별 언어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지 발굴하기 위해 릴레이 집담회, 국민 참여 캠페인 등을 실시한다. 지난 22일 초등학생 및 성 평등연구회 교사와 함께 집담회를 가진데 이어 청소년, 청년, 포털사이트 운영자 등과 함께 집담회를 연속으로 개최한다.
또 여가부는 오는 9~10월경 설문조사를 실시해 성차별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을 찾을 수 있는 캠페인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특정 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번지는 안타까운 모습이 목격돼 이에 대한 적극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며 “언어를 매개로 성차별적 인식이 표현되고 확산되는 경로를 면밀히 파악하는 등 성차별 구조와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