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골이 간절하던 후반 추가시간, 김영권의 왼발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김영권은 팔을 양쪽으로 뻗고 경기장을 달리며 득점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돌연 부심이 단호한 표정으로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다. 하필 김영권이 달려가던 방향에 그가 서 있었다. 부심의 깃발을 본 김영권은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몸을 돌려 주변을 살폈고,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야유가 뒤섞인 함성이 쏟아졌다. TV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한국은 27일 오후 5시(현지시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에 2대 0으로 승리했다. 경기 내내 양쪽 모두 선제골을 터뜨리지 못하며 팽팽히 맞섰지만 후반 48분, 손흥민의 코너킥을 받은 김영권이 차분하게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선수들의 골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그러나 부심은 입을 굳게 다물고, 엄숙한 표정으로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기적으로 인한 환희는 순식간에 큰 아쉬움으로 탈바꿈됐다.
한국 선수들은 즉각 거세게 항의했다. 해설위원들도 실망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지금 너무 아쉬운 순간이다. 비디오를 보면 좋겠다”면서 “상대의 수비수가 공을 찼다면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지금은 정확히 마지막 터치가 누군지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이거 골 안주면 주심 내려놔야죠”라며 분노했다.
결국 마크 가이거 주심은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선수들도 양측 감독도 초조하게 기다리던 상황에서 영상 판독을 마친 주심은 경기장으로 돌아와 한국 쪽으로 오른팔을 뻗었다. 골이 인정된 거였다. 김영권은 곧장 벤치로 달려가 동료들 품에 안겼고, 다른 선수들도 뒤따라 달려왔다. 선배 선수였던 박 해설위원은 기쁜 표정으로 박수를 친 뒤 “지금은 완벽하게 우리 선수들이 의지를 보여주고 골로 결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흥민의 쐐기골은 후반 51분에 나왔다. 독일이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리자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까지 하프라인을 넘어 공격에 가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세종이 재빠르게 달려들어 노이어의 공을 빼앗았고 패스를 이어받은 손흥민이 텅 빈 골대에 공을 넣었다. 주세종의 패스가 길게 이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손흥민의 빠른 스피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꺾고 쾌거를 이뤘지만 멕시코가 스웨덴에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이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독일을 2골 이상 차로 이기고 멕시코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리해야 했다. 그럴 경우 골득실차를 가려 16강 진출팀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한국의 신태용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결과적으로 16강에 못 올라 아쉽다”면서도 “독일을 이겨 한 줄기 희망을 본 것 같다. 앞으로 발전할 부분이 생겼다”고 밝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