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이유 없는 거짓말은 없다

입력 2018-06-26 14:51

초등학교 4학년 K는 걸핏하면 거짓말을 했다. 학교에서 야단을 맞고도 감추며 오히려 칭찬받은 것처럼 너스레를 떨고 심지어 “100점을 맞았다” “90점을 맞았다”며 금방 들통이 날 만한 거짓말을 한다. 엄마는 “아이의 표정이나 연기가 너무 천연덕스러워 계속된 거짓말에 속아 넘어 가기 일쑤예요” “이러다가 사기꾼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요” 라고 했다.

아이의 부모는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관련 육아서를 섭렵해서 읽었으며 많이 놀아 주려고도 열심히 노력했다’고 했다. ‘공부를 못한다고 야단치기 보다는 칭찬하려고 노력했으며, 아빠도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행동이 부모인 자신들 때문이라고 비난 받을까봐 두려운 듯 했다. 엄마, 아빠는 보기에도 성실해 보이고 학창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꽤 성과도 좋아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는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도 주말이면 놀이 동산이나 박물관 등을 데리고 다니며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며 뿌듯해 했다. 외동 아들이라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경제적으로도 아이가 원하는 건 대체로 들어주는 편이라고 하였다.

부모는 도덕적인 사람들이었다. 매우 정직하게 살아왔으며 아이에게도 그런 모범을 실제로 보여줬다 하였다.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했던 적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처음에 아이의 행동에 몹시 당황하여 심하게 야단을 쳐보기도 하고 다그치며 ‘그러다가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고 협박도 해보고 회초리를 들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아이가 아이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아이가 자존감에 손상을 받아서인가 싶어서 거짓말을 모른 체하고 속아 주기도 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늘어갔다.

부모가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를 처벌하는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아이가 왜 거짓을 했는지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불안하거나 야단맞기 싫어서 회피하고 하고자 할 때, 관심 받고 싶어서, 원하는 것을 제지당한다고 느낄 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의 증상으로, 칭찬 받고 싶은데 현실을 그렇지 못할 때 ‘마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K의 경우는 공부 잘했던 부모처럼 공부를 잘해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 했다. 못했다고 야단치지는 않았지만 성적을 잘 받아왔을 때만큼 부모님이 좋아하고 기뻐해 준 적인 없는 것 같았다. 칭찬받고 싶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부모가 K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100점을 맞지 못한 걸 엄마가 알고 있단다” “100점 맞아서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었구나. 그럴 땐 ‘100점 맞았어요’ 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100점 받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어려워서 속상해요’ 라고 말해야 엄마가 너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단다” 라고 말해 줘 보자.

정직함이 최선이라는 것과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들을 돌아볼 일이다. 아이의 성취여부를 가지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거나, 조건부의 사랑과 인정을 주었던 것은 아닌지......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