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주의자 신태용 ‘허세’와 ‘자신감’ 그 한끗 차이

입력 2018-06-26 09:48 수정 2018-06-26 09:56
신태용 감독이 25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루크 베이스캠프에서 코칭스태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신태용 감독은 자신감 넘치는 낙천주의자로 유명하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평가전에서 졸전을 펼쳤지만 신 감독은 “본고사에서 두고 보라”며 항상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 감독이 플랜A로 내세우는 전술은 손흥민과 황희찬을 앞세운 4-4-2 포메이션이다. 하지만 신 감독은 그동안 평가전에서 수차례 기성용을 내린 3-5-2 형태의 스리백을 실험했다. 포백과 스리백, 투톱과 스리톱을 유기적으로 바꾼다. 가변 전술을 구사하는 사실상 국내 유일의 지도자다. 부임 이래 치룬 평가전에서도 세간의 우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극단적인 전술 변화를 시도했다.

신 감독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에서 볼리비아와 경기를 마친 뒤 김신욱의 깜짝 선발과 황희찬과의 투톱 구성에 대해 “트릭(속임수)으로 보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드컵 조별예선 F조 상대인 스웨덴과 멕시코에게 교란을 주기 위해서 속임수로 전술을 썼다는 뜻이다. 신 감독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당시 손흥민과 이재성을 벤치에 앉히고 김신욱을 선발로 내세운 한국은 졸전 끝에 볼리비아와 0대 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신 감독의 ‘트릭’ 발언에 대해 월드컵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치른 소중한 평가전을 허무하게 버렸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의 ‘트릭’ 발언은 올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로까지 꼽히며 비난 섞인 조롱의 대상이 됐다.

신 감독이 호언장담 했던 ‘트릭’은 김신욱을 전방 중앙에 세워 스웨덴의 높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파격적인 4-3-3 포메이션이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제공권 싸움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윙백으로 발 빠른 손흥민과 황희찬을 배치해 승부를 보겠다는 계산이었다.

스웨덴이 당황했던 시간은 단 15분이었다. 스웨덴 센터백들을 봉쇄하기는커녕 우리 전술을 적응한 그들의 공격에 고립되고 말았다. 김신욱은 손흥민과 황희찬 같은 다른 공격자원들과 유기적인 패스플레이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느린 발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빠른 역습 상황에서 박자를 늦췄다.

신 감독은 침체된 선수단 분위기 속에서도 22일 “나름대로 내 몸에는 중남미 팀을 이길 수 있는 노하우가 쌓여있기에 맥만 짚으면 멕시코전을 충분히 해볼 만하다”며 다시 한 번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 감독은 2016 리우올림픽 때 멕시코를 꺾은데 이어 지난해 11월 A매치 평가전에서도 콜롬비아에게 2대1로 승리한 바 있다.

멕시코전 패배 이후 장현수(20번)이 머리를 감싸쥐고 아쉬워하고 있다. 뉴시스

패했지만 멕시코전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다시 플랜A로 돌아온 4-4-2 포메이션에서 손흥민과 황희찬, 문선민은 상황에 따라 중앙으로 좁히거나 2선으로 내려와 후방 라인에서 공을 운반했다. 공간을 찾기 위한 유기적인 움직임이 많았다. 득점으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발 빠른 공격수들을 앞세워 전개한 위협적인 역습이 여러 차례 이뤄졌다.

신 감독은 공을 탈취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말라고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그 결과 한국 대표팀은 4개의 옐로카드를 받았고, 24차례 반칙을 범했다.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고, 찬스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파울로 상대 공격 흐름을 끊었다. 장현수의 잇따른 치명적인 실책이 아니었더라면 충분히 승리까지도 기대해볼 법한 경기력이었다.

최근 한국 대표팀에 대한 비난 여론은 정점에 치달았다. 지난 18일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통한의 비디오 판독(VAR) 페널티킥을 내주고 아쉽게 0대 1로 석패한데 이어 24일 멕시코전에서도 1대 2로 졌다. 최근 부진했던 평가전 경기력에 월드컵의 뼈아픈 연패까지 더해져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질타와 냉대 역시 심해졌다. 두 경기 모두 1점차 패배를 했음에도 아쉬웠던 경기력에 많은 팬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 감독은 그야말로 전 국민의 ‘역적’이 됐다. 지금까지 신 감독이 보여 왔던 자신감은 전술적 오판이자 허세로 여겨지고 있다. 패배가 불러온 결과였다. 신 감독은 멕시코전 직후 “보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 생각하지 우리가 안에서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며 “6개월 동안 준비했던 부분이니 보는 것만 가지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항변했다.

아직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다. 신 감독은 25일 오후 베이스캠프에서 훈련을 진행하며 독일과 마지막 조별리그 3차전에 대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기적에 가까운 가능성을 위해 다시 한 번 자신감을 불태우고 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