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도 조언 못하는 한국의 창업난

입력 2018-06-26 09:14 수정 2018-06-26 16:47

한국과 독일은 ‘창업 활성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려면 젊은층이 미개척 분야에서 창업에 나서야 하는데 도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해법은 다르다.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자영업을 포함한 영세 소상공인의 불안정한 소득이 창업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재벌을 주축으로 하는 대기업이 각종 사업을 과점하면서 시장에 들어설 수 있는 입구가 막혀 있다.

OECD는 최근 발간한 ‘독일 경제 보고서’에서 독일 정부가 자영업자의 사회보장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재벌이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 한국에는 OECD조차 마뜩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규제 완화와 한계기업 정리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재벌의 ‘과점 체제’ 아래에서 활로를 찾기는 쉽지 않다.

OECD는 독일이 직면한 위기 가운데 하나로 창업 저하를 지목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 달러를 넘는 독일에서조차 창업 활성화는 어려운 숙제다. 25일 OECD에 따르면 독일의 창업 수치는 지난해 1분기 기준으로 90까지 떨어졌다. 2012년만 해도 110을 넘어섰다.


창업이 줄고 있는 이유로는 소득이 적다는 게 꼽혔다. 적은 소득에 비해 실패했을 때 회복하는 일은 어렵다.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서 실패한 기업가가 부채를 다 갚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년 정도다. 높은 취업률도 창업을 방해한다. 지난해 독일의 고용률은 75.3%였다. 한국(66.6%)과 비교해 10% 포인트 가까이 높다. 안정적 직장을 구할 수 있는데 소득이 적은 창업에 나서기 쉽지 않다.

한국의 상황은 좀 다르다. 고용률은 상대적으로 낮고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기준 9.8%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탈출구로 창업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손쉬운 자영업조차도 도전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OECD는 지난 20일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재벌 때문에 한국의 기업가정신이 저해된다고 꼬집었다. 슈퍼마켓처럼 저숙련자도 창업이 가능한 영역부터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의 기술 창업까지 모든 길이 다 막혀 있는 게 ‘재벌의 과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제조업의 경우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대기업 계열사가 차지하고 있다.

해결방안은 뭘까. OECD는 독일에 소득을 늘리기 위한 조치를 주문했다. 자영업자의 공공 노령연금 및 의료보험 가입 등 사회안전망을 갖춰 창업자들의 소득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시원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상호출자제한 등 한국 정부의 다양한 제도로도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지 못한 상황이 반영됐다. OECD는 차선책으로 규제 완화, 기술창업 대출 확대, 중소기업 지원 졸업제도 도입 정도만 조언했다.

혁신성장을 내세운 한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도 여기에 있다. 기획재정부는 50여명의 인력을 차출해 혁신성장 전담반을 설치했다. 창업 활성화와 같은 성과물을 내놓는 게 이들의 목표다. 하지만 시작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시 조직도 아닌 만큼 의욕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