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 B조에서 ‘무적함대’ 스페인과 톱시드 포르투갈이 예상대로 조 1, 2위를 차지하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란과 모로코의 치열한 저항 앞에 마지막 경기까지 가슴을 졸여야했다.
VAR의 최대 피해자, 아쉬운 모로코
모로코는 유독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모로코는 앞서 이란과 포르투갈에 연달아 0대 1로 패하며 일찌감치 16강 탈락을 확정했다.
모로코는 1차전인 이란전에서 90분 동안 경기를 주도했지만 마지막을 버티지 못했다. 유네스 벨한다와 아민 하릿, 하킴 지예흐 등을 앞세워 측면 공격으로 이란의 골문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수비일변도의 이란의 ‘질식수비’ 앞에 좀처럼 득점이 터지지 않던 상황, 후반 추가시간에 통한의 자책골이 나왔다. 상대 공격수 에산 하지사피의 왼쪽 측면 프리킥을 문전에서 올려내는 과정에서, 아지즈 부하두즈가 공을 걷어내려다 자책골을 넣어버리고 만 것이다.
포르투갈전에서는 현재까지도 논란에 중심에 있는 페페의 핸드볼 오심이 나왔다. 이날 모로코는 경기시작 4분 만에 세트피스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선제골을 내준 후 파상공세를 퍼붓고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그러던 중 후반 34분 포르투갈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을 걷어내려 했던 페페의 팔에 공이 맞았고, 이 모습은 중계카메라를 통해 명확히 포착됐다. 모로코가 페널티킥을 얻었다면 동점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이날 경기의 주심이었던 마크 가이거는 페널티킥(PK)을 선언하지도, 비디오 판독(VAR)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 장면을 본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VAR이 있는데 이걸 못 잡아내면 왜 있는 것인가. VAR이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이걸 안 잡아내면 VAR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미 탈락 확정으로 동기부여가 떨어져 모두가 스페인의 낙승을 예상할 때, 다시 한 번 모로코의 투혼은 빛이 났다.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몰아붙였다. 선제골을 넣은 쪽도 모로코였다. 전반 13분 이니에스타와 세르히오 라모스가 수비진영에서 서로 공을 미룬 틈을 타 역습 찬스를 잡았고, 부타이브가 데 헤아의 가랑이 사이로 슛을 시도해 골을 터뜨렸다. 5분후 이스코의 동점골이 터졌지만 전반전 경기력은 훌륭했다.
후반에도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코너킥을 받은 엔 네시리가 헤딩골을 터뜨려 스페인을 조 2위로 추락시키는 듯 했으나 추가시간에 이아고 아스파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마지막 마무리와 집중력이 아쉬웠던 와중, 포르투갈전에 이어 논란의 VAR 상황이 또 다시 나왔다.
후반 35분 모로코의 슈팅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피케의 오른 주먹에 맞고 골아웃 된 것. 모로코 선수들이 또다시 거세게 항의했으나 주심은 이를 외면했다. VAR를 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월드컵 사상 첫 도입이 된 VAR 제도에 눈물만 흘리게 된 모로코다.
세계무대에서도 증명된 이란의 ‘질식수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1063분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 이란의 막강한 수비력은 세계무대에서도 통했다. 3경기를 치르며 단 두골만을 내줬다. 수비일변도 전술을 구사하는 이란의 팀컬러는 확실했다.
독일, 브라질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스페인과 최고의 ‘창’ 호날두를 앞세운 포르투갈 역시 이란의 단단한 수비조직력에 고전했다. 이란 선수들은 공을 거의 소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90분 내내 집중력과 체력을 잃지 않았다. 일부 스페인 언론에선 이란의 수비를 ‘벙커’로 비유해 표현했다.
이란은 이번 대회에서 더욱더 깊어진 자신들의 ‘늪 축구’를 선보였다. 수비만 강력해진 것이 아니라,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역습찬스에서의 스피드 역시 더 날카로워졌고 조직력 역시 정교해졌다. 비록 골대 앞에서의 아쉬운 마무리와 결정력이 끝내 발목을 잡았지만 그 어떤 팀도 이란을 상대로 선제골을 승부처로 꼽을 만큼 세계 최정상급 수비력을 자랑했다.
2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선제골 실점 이후 공격으로 전환하는 이란의 압박 역시 놀라웠다. 최종 수비라인을 하프라인 부근까지 끌어올려 최강의 중원진으로 평가받는 스페인을 몰아붙였다. 후반 17분 사에이드 에자톨리아가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로 무산되기도 했다.
페르난도 이에로 스페인 감독은 “카를루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놀랍다. 경이롭고 정말 전문적이다. 이란은 쉬운 팀이 아니며 복잡한 팀이다. 우리 모두는 이란과 싸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포르투갈·스페인의 1차전을 포함해 명승부가 계속된 B조였다. B조에선 단 한 팀도 2승을 쌓아 승점 6점 이상을 기록한 팀이 없었다. 비록 탈락했지만 세계 최고의 두 팀을 끝까지 괴롭혔던 이란과 모로코의 선전은 매우 훌륭했다.
그들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압도적인 두 팀을 상대로 자신들의 축구를 했고 마지막 3차전까지 혼돈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들이 아쉬운 성적표에도 당당히 고개를 들고 귀국길에 오를 수 있는 이유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