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70대 남성이 사망하기 3일 전 혼인신고를 한 90대 여성에게 배우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연금 수급권자 지위를 얻지 못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심홍걸 판사는 이모(91)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미지급 장해연금 차액 일시금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이씨는 사위 김모씨의 소개로 2013년쯤 고(故) 정모(사망 당시 70)씨와 처음 만났다. 정씨는 2007년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낙하물에 부딪혀 부상을 입은 뒤 장해등급 2급 판정을 받아 장해보상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던 중이었다.
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정씨와 알게 된 후 수년간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돌연 2016년 정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정씨는 3일 뒤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사망 이후 이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정씨의 장해보상연금 차액일시금을 청구했다. 공단은 “혼인 당시 정씨의 인지력이 부족했고 사회 관념상 정상적인 부부로 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씨는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정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병간호를 도와주었다”면서 “산재보험급여로 함께 생활하면 서로 좋겠다고 생각해 혼인신고를 했다”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 역시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 판사는 “민법상 당사자 사이 사회 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 의사 합치가 없으면 혼인 무효 사유가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혼인 당시 이씨는 정씨보다 20세가 더 많았다”면서 “정씨가 법률상 이혼신고 9일 뒤 혼인신고를 했고 그로부터 3일 만에 사망했다”고 상황을 되짚었다.
또 이씨의 의도에도 의문을 품었다. 심 판사는 “이씨는 정씨를 알게 된 지 약 4년간 별다른 교류가 없었는데, 사위와 권씨의 권유로 갑자기 혼인신고를 했다”면서 “사위와 권씨는 이전에도 산재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다른 여성과 정씨의 혼인을 주선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씨의 산재보험급여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던 권씨가 정씨 사망 후에도 연금을 이용할 목적으로 이씨와 혼인을 주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