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통 당했죠.”
배우 조진웅(본명 조원준·42)의 입에서 대뜸 튀어나온 말.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에 대한 소감을 막 물은 참이었다. 원체 만족이라고는 모르는 그라지만 여느 때보다 묵직한 고민의 무게가 감지됐다. “처절하게 힘들었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독전’은 아시아를 장악한 유령 마약조직 보스 ‘이 선생’의 정체를 쫓는 범죄액션물. 극 중 조진웅은 이 선생을 잡기 위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조직의 핵심 연락책 락(류준열)과 손을 잡은 형사 원호 역을 맡았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인물인 만큼 행동의 개연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그냥 달리면 되는, 굉장히 쉬운 영화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된통 당했다”면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 가장 힘들었다. 답을 가지고 들어간 영화에 답이 없더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석을 해야 하나’ 싶은 지경까지 갔다”고 토로했다.
“원호라는 인물은 한마디로 ‘츤데레’예요. 락이 입을 열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보면 볼수록 느낌이 이상한 거죠. 감독님한테 가서 ‘이런 영화야? 그냥 때리고 부수는 영화 아니야?’ 묻기도 했어요. 서서히 피가 마르더라고요. 엔딩에서 락이 그러잖아요. ‘여기서 어쩌실 건데요?’ 그땐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영화가 나에게 질문하는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는 조진웅은 “지금 이 시점에 저에게 그런 질문이 던져졌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상당히 적절했던 것 같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내가 왜 왔지’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봤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해답은 아직 찾아가는 중이다. “분명한 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지점을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저에게는 고마운 작품이에요. 그냥 지지고 볶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생각할 거리를 준 거죠. 사실 아직도 완전히 소화되진 않았지만, 좀 더 살아볼 만하다는 의미가 생겨났어요. 다행이죠.”
극 중 마약조직의 간부 박선창(박해준)과 중국 마약시장의 거물 하림(고 김주혁)을 이중으로 속이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마약상인 척 연기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마약 투약 후 밀려드는 극한의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표현해내야 했다.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조진웅은 소금을 수차례 코로 흡입하는 투혼을 불살랐다.
“약 해본 놈 같던가요(웃음)? 저의 메소드는 그거였어요. 사망 직전에 이르는 고통을 표현해내는 것. 근데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잖아요.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막막했죠. 여러 각도에서 찍어야 해서 소금을 서너 차례 흡입했는데, 나중에는 몸이 받아들이질 않더라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기름기 쫙 뺀 건조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도 감행했다. 체중 조절이라면 도가 튼 그이지만 매번 힘들긴 마찬가지란다. 조진웅은 “‘찌웠다 뺐다 잘하는 배우’라는 말은 제게 ‘삶을 쥐었다 놨다’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화면 속 저를 보면서 저도 안쓰럽더라”면서 “하지만 원호 캐릭터에 도움이 됐으니 다행”이라고 웃었다.
“체중이 빠지면 물론 좋겠지만, 저는 못하겠어요. ‘나 이렇게 살 거야 왜’ 하는 마음이죠(웃음). 제 또래 잘생긴 배우들 보면 참 존경스러워요. 그들은 평생 지켜 온 삶의 틀이 있거든요. 얼마나 운동하고 관리하는지 몰라요. 저랑은 DNA부터 다른 것 같아요. 난 그렇게 못 살겠어요. 아니 안 할래(웃음).”
‘독전’의 흥행으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 조진웅의 ‘열일’은 계속된다. 오는 8월 8일 ‘공작’(윤종빈) 개봉을 앞두고 있고, 유해진 이서진 등과 호흡을 맞춘 ‘완벽한 타인’(이재규) 촬영을 마쳤으며, 현재 손현주 박희순 등과 ‘광대들’(김주호) 촬영에 한창이다.
조진웅은 “재미있는 작품이 있으면 하게 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그런 거 아니겠나(웃음). 나에게 ‘다작(多作)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런 개념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중간중간 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얘기했다.
“요즘 시장에 도는 시나리오들은 거품이 싹 빠졌어요. 한국영화계가 많이 발전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물론 더 나아가야겠죠. 배우들은 연기술을 연마하고, 스태프들은 작업의 퀄리티를 높이고요. 표준계약제가 도입되고 나서는 촬영 여건도 좋아졌어요. 이제는 숨을 쉴 수 있게 됐죠.”
조진웅은 “지방촬영 때 스태프들 숙소를 돌아보면 깜짝 놀란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실수를 줄이기 위해 계속 연습을 하고 있더라”면서 “촬영 때는 누구랄 것도 없이 ‘다시 한번 가자’고 의욕을 보인다. 이런 정서가 모이니 할리우드 부럽지 않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미소를 지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