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란데 코치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입력 2018-06-24 12:29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출신 토니 그란데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한국은 신태용 감독 체제에 경험과 전략을 더하기 위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유로2012에서 스페인의 우승을 이끈 토니 그란데 수석코치와 하비 미냐노 피지컬 코치, 파코 가르시아 전력분석 코치를 영입했다. 당시 팬들은 이를 두고 “히딩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마법을 기대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 토니 그란데도 구하지 못한 한국 축구

그란데 코치는 한국 대표팀에 전술 조언과 훈련 계획에 대한 의견을 주고 있다. 스페인 축구대표팀에서 수석코치를 했던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상대팀 전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그란데의 몫이다. 특히 스페인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는 멕시코 선수들의 장단점은 그란데 코치가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한국은 멕시코에 1-2로 패배하며 사실상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란데 코치의 등장은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낳았다. 레알마드리드와 스페인 국가대표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지도한 그가 과연 한국 대표팀에 맞는 옷이냐는 이유였다. 그란데 코치도 과거 인터뷰에서 “어떻게 보면 나는 스페인에서 복을 받았다. 스페인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주요 선수들이 같은 몸 상태와 생활 사이클을 가지고 대표팀에 온다. 감독, 코치는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맞춰가면 된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활약하는 리그가 다르고, 일정이 달라 각자 다른 몸상태로 월드컵을 준비하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했다.

그란데 코치는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기량 차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의 기량 차이는 객관적으로 크다. 이는 곧 ‘전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전술이라도 선수가 소화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란데 코치의 20년 커리어 역사에서 한국 대표팀은 가장 약한 팀이었다. 그란데 코치에게도 첫 도전이자 모험이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다.

그란데 코치는 최선을 다했다. 칠순의 나이에도 그는 이번 러시아월드컵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했다. 대표팀을 챙기고 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는 바쁜 일정으로 서울에 있을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란데 코치는 월드컵 기간에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코치들과 교환했다. 구체적으로 그란데의 의견이 한국 대표팀에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월드컵이 끝나 봐야 알 수 있다. 그는 수석코치일 뿐 결정은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 “악바리 근성이 없다”

그란데 코치가 유일하게 한국 대표팀에 쓴소리한 적이 있다. 월드컵 시작 전 그란데는 “우리(한국) 선수들이 적극성이나 거친 면이 없다. 스페인어로 ‘maldad’라고 하는데 악바리 근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축구는 신사적인 스포츠지만 모든 경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상대가 비신사적으로 나올 수 있을 텐데 좀 더 거칠게 하는 플레이를 하도록 요구하고 끄집어내고자 하고 있다”고 했다.

피지컬 코치인 미냐노 또한 “한국 선수들은 패배에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월드컵에선 정신력과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에도 그런 선수들이 있지만 이런 경험이 한국 선수들에게 부족했다. 이런 수준의 대회에선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냐노 코치는 정신력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프로 선수가 최고 경기력을 내려면 정신이 중요하다. 이기든 지든 냉정해야 한다. 이겼을 때도 냉철해야 하는데, 졌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스웨덴전에 비해 멕시코전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개선됐다. 선수들은 악바리 근성을 발휘하며 발에 쥐가 날 정도로 뛰며 멕시코를 압박했다. 팬들이 요구한 모습이었다. 팬들은 “왜 진작 스웨덴전에 이렇게 하지 못했냐”며 아쉬워했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16강 진출도 아니고, 승리도 아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패배하더라도 멋지게 패배하는 모습 말이다. 독일전 또한 선수들의 악바리 근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박재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