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고(故) 김종필 전 총리가 걸어온 길

입력 2018-06-23 11:56 수정 2018-06-23 12:06
자민련총재 시절 모습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의 일기로 23일 오전 8시15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자택에서 쓰러진 뒤 119구급대로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다. 공주 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씨의 딸 영옥씨와 결혼하면서 이후 처삼촌인 박 전 대통령이 일으킨 1961년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인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부장을 역임했고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다. 1971년부터 75년까지 4년 6개월간 국무총리를 재임하며 ‘실세’ 노릇을 톡톡히 하며 ‘박정희 후계자’로 불렸다.


그러나 5·16 쿠데타 세력간 권력다툼으로 1963년 1차 외유를 했다. 이때 남겼던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후 1964년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 1968년 3선개헌 추진세력과의 충돌 등으로 한때 권력에서 멀어지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으로 불리며 시대를 이끌었다.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충청권 맹주’가 됐다. 충청권 지역주의 정치를 심화하는 등 한국정당정치의 후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1992년, 1997년 대선에서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권좌에 올리는 킹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평화방송개국리 션 김대중 김재준 김종필등 내빈과 김수환 추기경등이 건배를 하고 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3당 합당으로 한 배를 탄 YS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특히 1996년 4월 11일에 이루어진 DJP 연합은 한국 정치의 흐름을 바꿨다.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 시절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연합했고, 이듬해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이 됐다. 김 전 총리는 1998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김대중 정부의 초대 총리를 맡았다. 이때부터 ‘호남 대통령’과 ‘충청도 총리’로 불렸다.


3김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 자리에 앉지 못했던 그는 ‘영원한 2인자’로 불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정당의 당수,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대권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적 물의를 거의 일으키지 않은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후원의 행사에 참석한 김종필 총리와 박근혜 의원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국회의원 10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았다. 충청권 표심이 김 전 총리에 크게 좌우되자 숱한 대권 주자들이 그에게 조언을 들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씨를 위로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골프회동

1987년 민주화 다음해인 1988년 5월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열린 <88년후반기 한국정치의 중요과제>에 대한 대화모임 (왼쪽으로부터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강원용)

김 전 총리는 2008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휠체어에 의존해왔으나 2013년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회’ 창립총회를 열고 2015년에는 43년의 정치인생을 펴낸 책을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도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그는 쿠데타세력이자 충청권를 중심으로 지역정치를 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한국정치계의 원로로서 긍정적 역할도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치권에 영향력을 유지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김종필 전 총리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기다리며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있다. 바로 옆에 MB가 보낸 생일 축하 난이 놓여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rk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김종필 증언록' 출판 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