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많은 명언을 남겼다. 김 전 총리는 정치 현실과 본인의 심경을 담은 은유적인 표현을 자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춘래불사춘’과 ‘몽니’는 그의 대표적인 말로 남아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두고 그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길었던 유신시대가 끝나는 듯했지만 신군부는 ‘3김’의 정치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부정축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요 조종 혐의로 연행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됐다. JP는 박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씨가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민주주의 시대가 온 듯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신군부는 3김씨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JP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DJ도 소요 조종 혐의로 잡혀 갔다. YS는 공직을 박탈당하고 가택연금됐다.
1990년 3당 합당 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마산파동’을 일으키자 JP는 이를 “틀물레짓”이라며 비난했다. ‘틀물레짓’은 행동이 아이처럼 서투르고 유치하다는 충청도 사투리다.
1995년 민자당에서 탈당해 거대 야당인 자민련으로 재기한 뒤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사랑에는 후회가 없습니다”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권력을 손에 넣자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1996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역사 바로세우기 정책을 펼칠 때는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8년 6월 총리서리를 맡고 있을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떨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전 총리의 명언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지난 2015년 부인 박영옥 여사가 별세했을 당시 조문을 많은 정계 인사들에게 그는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들을 아끼지 않았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는 “대통령은 다 외로운 자리다. (박근혜 대통령을) 가끔 찾아 뵙고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정치인은 국민을 호랑이, 맹수처럼 알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외교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았다. 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국민의 반발을 샀을 때는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박 여사를 잃은 김 전 총리에게 위로 서신을 보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두고 “아베 신타로(아베 총리의 아버지)는 사람이 참 좋았는데, 이 사람은 좀 그렇다”고 꼬집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