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의 풍운아 김종필 전 총리 92세로 서거

입력 2018-06-23 11:03 수정 2018-06-23 12:14

한국 정치의 ‘풍운아’로 불려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 그의 타계로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트로이카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며 “집에서 쓰러진 뒤 119구급대로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한 달 전부터 기력이 떨어져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처삼촌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1년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중앙정보부 초대 부장을 지낸 것을 시작으로 이후 30년 이상 정권의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1971년부터 75년까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다.


다만 그는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일어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 지나치게 양보를 많이 했다는 비판이 거세졌고, 이후 6·3 사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이후 재기에 성공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으로 불리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3명이 주도한 ‘3김 정치’는 한국 정치를 거의 30년간 지배했으며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특히 1996년 4월 11일에 이루어진 DJP 연합은 한국 정치의 흐름을 바꿔놓는 역사적 사건이 됐다.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이던 김 전 총리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와 연합했고, 이듬해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이후 1998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김대중정부의 총리를 맡아 ‘호남 대통령’과 ‘충청도 총리’로 공동정부를 이끌었다.


김 전 총리는 3김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영원한 2인자’로 불리기도 했다. 9선 정치인인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는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정치권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충청권 표심이 김 전 총리에 의해 좌지우지되자 숱한 대권 주자들이 그의 자택을 찾아와 조언을 들었다. 그는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에도 적극적인 발언을 내놓으며 정치권에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때에는 선거를 직접 돕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쿠데타세력이자 충청권을 바탕으로 한 지역정치를 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한국정치계의 원로로서 긍정적 역할도 많이 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특히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 국정이 잘못 흘러갈 경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말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발언을 하며 영향력을 유지했다.

평생 보수적 이념가치를 지녔던 김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란을 겪고 있는 보수 진영이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 전 총리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자유한국당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과 홍준표 전 대표 등을 비롯한 보수 진영 주요 정치인들이 조의를 표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으며, 빈소에도 앞다퉈 찾아와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김 전 총리 별세와 관련해 총리실에 장례를 준비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도 김 전 총리 장례식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의 장례 지원 지시는 김 전 총리가 총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인 데다 충청권과 보수 진영에서 정치적 원로로 존경하고 있는 상황을 두루 감안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김종필 전 총리 약력>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 출생
1944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 및 일본중앙대학 예과 입학·자퇴
1945년 대전사범학교 졸업 후 국민학교 교사 부임
1946년 서울대 사범대학 입학
1948년 육군 입대 1주일 만에 탈영 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재입대
1949년 육사 8기 졸업 및 소위 임관(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1951년 박영옥(박정희 전 대통령 조카) 여사와 결혼 및 제1차 군장교단 도미 유학생으로 미 육군보병학교 입학
1958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
1961년 5·16 군사정변 참여 및 제1대 중앙정보부장
1962년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무장관과 회담(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초석 마련)
1963년 육군 준장 예편 및 민주공화당 창당위원장
1963년 민주공화당 입당 및 제6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의장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1971년 민주공화당 부총재 및 제8대 국회의원, 제11대 국무총리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1976년 한·일의원연맹 회장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및 공화당 총재 상임고문
1980년 전두환 정부로부터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 환수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 및 초대 총재, 제13대 대선 낙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1990년 YS·DJ와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해 민주자유당 출범 및 당 최고위원
1995년 민자당 대표위원 사퇴,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 및 초대 총재, 제15대 국회의원
1996년 자민련 명예총재, 자민련은 제15대 총선에서 50명 당선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DJ와 후보 단일화(DJP연대)
1998년 제31대 국무총리
2000년 자민련, 제16대 총선에서 17석 획득(원내교섭단체 구성 실패)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 찬성(DJP연대 결렬)
2004년 자민련, 제17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4명만 당선돼 군소 정당으로 전락 후 정계 은퇴
2006년 자민련, 한나라당과 통합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 선대위 명예고문
2008년 뇌경색으로 치료
2012년 새누리당 탈당
2015년 부인 박영옥 여사 타계
2018년 6월 23일 별세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