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운전대 잡았지만 시동은 아직… 男 위협 계속되는 사우디

입력 2018-06-23 08:00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2014년 3월 29일 여성의 운전금지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로 운전하고 있던 한 여성의 자료사진. 사우디 당국은 작년 9월26일(현지시간) 마침내 사상 최초로 여성의 운전면허 취득과 남성 보호자없는 자동차 운전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AP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24일(현지시간)부터 운전대를 잡는다. 법이 바뀌면서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보수적인 남성들의 위협과 반대 탓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1일 ‘사우디 여성 운전자가 직면한 마지막 걸림돌: 사우디 남성’이라는 기사에서 “사우디 여성들이 곧 운전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길거리 모욕, 가족·친척들의 반대를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여성들은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돼 들떠 있지만 상당수의 여성들은 일부 남성들의 협박과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 운전자를 도로에서 만나면 위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문화적 금기를 깨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가족과 친척들도 있다. 이 같은 공개 협박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번 달에 희롱이나 괴롭힘을 처벌하는 법도 통과시킬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 사탐 빈 압둘라지즈 대학의 타하니 알도스마니 교수가 6월4일 수도 리야드에서 새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해온 사우디는 이날 처음으로 10명의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했다. AP뉴시스

WSJ가 만난 제다에 거주하는 알라나우드 하카미(22)는 희롱이나 폭행 등을 당할까 두려워 운전면허를 취득할 계획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의 남편과 아버지는 매일 차로 직장에 출퇴근을 시켜주면서 ‘여자가 운전면허를 따면 위험하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카미는 “젊은 사우디 남성들을 신뢰할 수 없어서 운전을 하고 싶지 않다”며 “이곳은 외국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로는 남성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다. 성직자들은 여성들이 운전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며 여성이 운전을 하면 사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믿음은 2017년 9월 사우디가 사상 최초로 여성의 운전면허 취득과 남성 보호자 없는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며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성운전을 향한 사회적 낙인은 지속되고 있다.

많은 남성들은 여성운전을 허락하는 법률이 통과되기까지 각종 SNS를 활용해 “절대로 운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반대를 표했다. 법률이 통과된 뒤에는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 “운전을 하려고 하면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체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운전대를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여성운전을 찬성하는 일부 남성들마저도 “내 여자는 운전 못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제다에 거주하는 직장인 아부 모하마드는 비상사태에서만 그의 아내와 딸들의 운전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이 시행되는 24일부터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며 “교통지옥이 될 것 같아 외국으로 여행을 가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많은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며 “여성들은 주방에서 도로로 처음 나가고, 사고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수천명의 여성들은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이미 운전학원까지 등록해 놓은 상태다. 현재까지 6개의 여성 전용 운전학원이 개업했고, 이미 운전면허를 딴 여성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택시 운전사로도 근무할 수 있게 된다.

박세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