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서 갔는데…‘상담소 성폭행’ 갈 길 멀다

입력 2018-06-22 13:03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명 심리상담가가 내담자들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타인에게 보여준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겨레 신문은 서울 용산경찰서가 2015년 2월 말 서울 강남의 한 정신분석 클리닉 대표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2년과 2013년 각각 상담소를 찾은 피해자들과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고 그 장면을 몰래 촬영해 주변에 보여준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심리상담가와의 성관계 자체가 성폭행으로 간주되지 않는 법적 현실이다. 현행법은 물리적 강제력과 협박 등이 수반되거나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을 경우 성폭행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내담자는 상담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기때문에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다. 그러나 ‘상담 문화’가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이 특수성을 더더욱 보장하지 않는다.

한겨레에 따르면 미국에선 1970년대 중반 이후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상담가-내담자 사이 권력 관계가 드러나자, 뉴욕주 등 23개 주가 내담자와 성적 접촉을 가진 심리상담사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규정을 마련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변호사 A씨는 “미국과 같은 나라는 보호의무가 있는 관계에서의 성관계 자체가 성범죄 구성요건에 들어가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법적 체계가 미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그래서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 등을 주력 고소방향을 잡았지만 이 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성폭력 특례법 제 14조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의 경우 촬영대상자의 의사와 촬영물의 반포·판매·임대·제공이 관건이다. 그러나 고소 대상이 인터넷이나 단체카톡방처럼 다수에게 사진을 유통하지 않고 한명의 지인에게 직접 영상을 보여준 것만 인정됐기 때문에 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형법에선 패소했지만 피해자와 A씨는 직무상 보호의무 위반 등을 사유로 민사 소송 중이다. A씨는 “미국 같은 경우에도 ’상담실 성폭행’이 처음부터 형사법 처벌 대상인건 아니었다” 며 “민사적 책임이 인정되고, 사회적 합의가 생기면서 형사법 입법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진입 단계에 있다”이라고 전했다.

한편 해당 소송은 8월 중에 선고가 날 예정이다.

손민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