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페이스북 ‘수원익명 대신 말해 드립니다’ 페이지에는 한 익명의 외국인 여성의 사연이 올라왔다. 그는 “20살에 한국에 와서 결혼했다. 5년 동안 남편이랑 살면서 감옥 같았다. 출산 후에는 더 지옥 같았다. 나만 괴롭히면 다 참을 수 있는데 아이까지 괴롭혀서 더 힘들었다”면서 “살림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한테 용돈 20만원 주는 것도 아깝다면서 괴롭혔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냥 참고 살려고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아기까지 때리려고 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이혼하자고 했다. 그러자 칼을 가져와 이혼하고 싶으면 같이 죽자고 했다”면서 “만약 이혼하고 싶으면 나를 한국으로 데려오고 먹이느라 썼던 돈을 돌려달라며 3천만 원을 요구했다. 아기랑 그냥 단둘이 살고 싶다. 큰 꿈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드냐”며 참담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 국내 결혼이주 여성, 10명 중 4명 이상이 가정폭력 경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해 7월부터 두 달 동안 결혼이주 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가 가정폭력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4명 이상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이다. 폭력 유형으로는 심한 욕설 등 언어폭력이 81%로 가장 많았고,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는 응답도 20%에 달했다. 그러나 이런 폭력을 당해도 신고 방법을 몰라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32%로 나타났다.
또 한국 국적 자녀를 키우는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정부의 양육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는 응답이 35.5%를 차지했다. 반면 ‘안다’는 응답은 53.9%로 절반을 간신히 넘었다. 폭력을 당하거나 갈 곳 없는 결혼이주민을 위한 쉼터 존재를 묻는 말에도 ‘모른다’고 답한 여성이 27.6%나 됐다. 인권위는 “결혼이주민들의 경우 배우자의 협조 여부에 따라 체류 자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폭력을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면서 “법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필리핀과 캄보디아가 국제결혼을 금지했던 까닭
국제결혼의 어두운 이면과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몇몇 나라는 국제결혼과 관련된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자국 여성이 외국 남성과 금전적인 이유 등으로 결혼하는 사례가 늘자 1990년 ‘결혼중개업 금지법’을 제정했다. 필리핀 정부가 자국 여성의 국제결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었다. 또 2015년 필리핀 대사관은 자국 내 국제결혼중개업체 설립이나 광고 홍보 등을 금지하는 ‘결혼중개업 금지법’ 조항을 한국 외교부와 법무부 등에 보내기도 했다.
캄보디아 정부 역시 국제결혼 금지령을 두 차례 내린 적 있다. 2008년 ‘국제결혼이 인신매매 통로로 이용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유엔 국제이주기구(IOM)가 채택해 발표한 직후 그해 3월 캄보디아 정부는 국제결혼을 잠정 중단시켰다. 그리고 정부 승인을 받아야만 외국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국제결혼 금지령이었다. 하지만 반발이 거세지자 같은 해 ‘연애결혼’에 한해서만 다시 허용됐다.
이후 2010년에 두 번째 금지령 조치가 취해졌다. 두 번째 조치에서는 오직 한국인만 대상이 됐다. 각종 결혼 사기와 브로커 개입에 따른 문서 위조, 인권문제 등이 불거졌던 것이다. 게다가 2009년 9월 국제결혼 중개업자가 캄보디아 여성 26명을 한데 모아 한국인 1명에게 맞선을 보도록 주선했다가 적발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한 달 뒤,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의 국제결혼법을 보다 강화하는 조건으로 한국 남성들에 대한 국제결혼 금지령을 풀었다.
◆ ‘성 상품화’ 조장하는 결혼중개업 광고… 외모·나이 강조
결혼이주 여성들의 비율을 따져보면 베트남 출신이 42.4%, 중국이 29.4%, 필리핀이 11.4%, 일본이 6.5%, 캄보디아가 3.6%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국제결혼 대부분이 국내에서 짝을 찾기 어려운 남성들이 동남아시아 등에서 신부를 데려오는 방식으로 결혼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국제결혼의 상업성을 노리고 시장에 발을 들이는 결혼중개업체들은 종종 기본적인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집단 맞선을 주선하기도 한다.
나이 어린 신부를 선호하는 고객들의 성향에 맞춰 어린 신부를 소개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도 국제결혼 중개업 광고가 성행하고 있는데, 해당 광고들이 여성들의 외모나 나이를 강조하는 것을 두고 ‘성 상품화’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상에서는 여성들의 인적사항을 상품처럼 나열하면서 여성들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심지어 이런 광고는 포털사이트나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광고는 바로바로 단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라 일일이 조치를 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혼이주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에 대한 시각 자체가 잘못된 남성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려고 돈을 내는 행위가 근본적으로 ‘인신매매’와 다를 게 없다”면서 “국제결혼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