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수비축구가 ‘무적함대’ 스페인을 상대로 빛을 발했다. 비록 졌지만 실점을 1개로 막았다.
이란은 21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스페인과 가진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B조 2차전에서 0대 1로 졌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내용에선 칭찬을 받기에 충분했다.
스페인은 디에고 코스타가 행운의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가까스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란의 조직적인 단단한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부 스페인 언론에선 이란의 수비를 ‘벙커’로 비유해 표현했다.
스페인은 객관적인 전력상 독일, 브라질과 함께 러시아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이란은 이런 스페인에 맞서 예상대로 극단적인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전개했다. 패널티박스에 모든 선수들이 연습된 플레이를 바탕으로 단단한 수비를 펼쳤다. 그러면서 위협적인 한방을 노리는, 전형적인 약팀이 강팀을 잡는 전술이었다.
공을 거의 소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90분 내내 집중력과 체력을 잃지 않는 이란 선수들의 투지 역시 빛났다.
다만 행운은 스페인 쪽에 있었다. 코스타는 슛이 이란 수비수 라민 레자에이안에게 걸려 막히는 듯 했지만, 레자에이안이 걷어낸 공이 다시 코스타의 무릎을 맞고 굴절돼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란은 이후부터 놀라운 압박을 시작했다. 최종 수비라인을 하프라인 부근까지 끌어올려 최강의 중원진으로 평가받는 스페인을 몰아붙엿다. 후반 17분 사에이드 에자톨리아가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로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만회골을 기록하지 못해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이란이 보여준 공격력과 수비력은 인상적이었다.
2011년에 부임한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체력적인 축구를 강조하며 수비를 강력하게 만들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수석코치로 활약하며 전술적으로 보조했던 그는 이란에서 자신의 축구 철학과 전술적 역량을 완벽하게 녹여내고 있다.
러시아에서 아시아 축구 최강자로서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1063분 동안 무실점을 기록한 이란의 수비력은 세계무대에서도 증명됐다. 이제는 단순한 ‘침대 축구’나 ‘늪 축구’로 평가되지 않는다. 스페인을 포함한 세계의 그 어떤 강팀도 이란을 상대로는 선제골을 승부처로 여기고 있다.
이란의 다음 상대는 2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며 러시아월드컵 득점 부문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돼 동기부여가 떨어진 모로코를 상대로 스페인의 승리가 유력한 상황에서 포르투갈과의 승부는 사실상 16강 결정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