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6·13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16일 일본에서 귀국했다. 뉴질랜드와 미국, 일본을 오가는 ‘자의반 타의반’ 외유를 1년 1개월 만에 종료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20일 “양 전 비서관의 몸이 너무 좋지 않다”며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1년 넘게 해외에서 혼자 지냈는데, 몸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은 당분간 집에서 쉬며 건강을 돌보고, 향후 거취 문제를 고민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계자는 “영구귀국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5월 16일 새벽 지인들에게 “제 역할을 여기까지이며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9일 뒤인 25일 뉴질랜드로 출국했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 적을 두고 한국을 가끔 오가며 지냈다. 지난 1월에는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 참가를 이유로 국내에 들어와 두 달 가량 머물다 3월 다시 일본으로 출국했다.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양 전 비서관의 거취에 쏠려 있다. 양 전 비서관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측근 정치’라는 말만 나오지 않는다면 쓰임새가 무궁무진한 참모다. 친문 세력 내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다. 현재 청와대와 정부에서 일하는 문 대통령의 참모 중 많은 이들이 양 전 비서관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했던 인물들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양 전 비서관이 삼고초려를 통해 문재인 캠프로 끌어들였다. 문 대통령이 가장 편하게 대하는 참모는 김경수 경남지사고, 문 대통령을 가장 잘 아는 참모는 양 전 비서관이었다는 얘기가 정설이다.
지방선거를 끝낸 문재인정부는 이제 집권 2기에 진입했다. 규모는 소폭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내각과 청와대 개편이 예고된 상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정청 모두 개편이 예고됐고, 문 대통령 최측근인 양 전 비서관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됐다.
하지만 양 전 비서관이 청와대나 내각 여당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을 잘 알고, 추진력도 강하고, 친문 세력의 핵심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세 측근’이라는 꼬리표가 너무 강하다.
게다가 양 전 비서관이 그동안 내놓았던 말들이 너무 강했다. 양 전 비서관은 ‘잊혀질 권리’ 편지에서 “멀리서 그분(문 대통령)을 응원하는 여러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나 친문 친노 프레임이니 삼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책 출판 기념 북콘서트에서도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 광화문 근처에 얼씬도 않고 공직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던 발언들이었다. 양 전 비서관이 문재인정부 2기에 공직을 맡는다면 스스로 말했던 ‘패권’ ‘친문’ ‘측근 정치’ 프레임들이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
마땅한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여권 내부에서 양 전 비서관의 입지를 고려하면 그렇다. 양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어떤 자리를 맡든 힘이 실리게 된다. 몸을 낮춰 비서관 자리에 가도 ‘실장급 비서관’이 되고, 수석 자리를 맡아도 ‘실장급 수석’이 된다. 내각도 마찬가지다. 차관급 자리에 가면 바로 ‘왕 차관’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명박정부 시절 ‘왕 차관’이었던 박영준 차관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는 구조다. 민주당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 내부에는 친문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만, 의외로 양 전 비서관을 비토하는 세력도 많다. 21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다.
양 전 비서관의 거취는 결국 문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그러나 당장 문 대통령이 양 전 비서관을 중용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문재인정부 1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남북문제와 지방선거 성적이 좋다. 이는 임 실장을 비롯한 현 청와대 참모들이 문 대통령을 잘 보좌했다는 의미고, 문 대통령도 지방선거 직후 청와대 참모들과 내각에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 지지율도 고공행진 중이다. 양 전 비서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없다. 문 대통령이 양 전 비서관을 기용해 여권 내 세력구도를 흔들고, 정치적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일자리와 최저임금, 혁신성장 등 경제 부분이 가장 큰 문제지만, 양 전 비서관이 경제전문가는 아니다.
결국 양 전 비서관의 국내 생활 역시 지난 1년 간의 해외 생활도 마찬가지로 당분간 ‘백의종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문 대통령의 판단, 여권 내 지형 변화 등 돌발적인 상황이 변수다. 여권 관계자는 “양 전 비서관 본인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며 “급하게 움직이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