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목숨을 빼앗고 30명을 다치게 한 전북 군산시 장미동 주점 화재사건은 외상값 10만원 때문에 빚어진 참변으로 드러났다. 방화 용의자 이모(55)씨는 외상값 문제로 이틀 새 세 차례나 이 주점을 찾아가 여주인과 말다툼한 뒤 홧김에 불을 질렀다. 사소한 술값 시비가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간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전북지방경찰청은 18일 브리핑을 통해 이씨가 사건 당일인 전날 내항에 있던 한 선박에서 기름통 1개를 들고 와 주점 입구에 던지고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6일 오후 3시쯤 주점에 찾아와 여주인 A씨(55)에게 외상값 20만원을 갚았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술값이 10만원밖에 안 되는데 왜 20만원이라고 하느냐”며 심하게 다퉜다. 그는 사건 당일인 17일 오후 2시쯤 다시 찾아와 A씨와 같은 문제로 언쟁하다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항의한 뒤 돌아갔다. 이후 그는 오후 8시쯤 20ℓ들이 기름통 1개를 들고 돌아와 주점 건너편 사무실에서 기다리다 9시53분쯤 주점 입구에 던지고 불을 질렀다.
갑자기 시뻘건 불길이 치솟자 주점 내부는 순식간에 끔찍한 현장으로 변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 중 몇몇은 입구를 통해 빠져나왔으나 대부분은 무대 옆 비상구 쪽으로 피하려다 쓰러졌다.
불은 1시간여 만에 진화됐지만 내부에 있던 장모(47)씨 등 3명은 유독가스에 중독돼 숨졌다. 30명이 중경상을 당했고 이 중 5∼6명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 불을 낸 이씨 본인도 얼굴과 배 등에 중화상을 입고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주점 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고 목격자는 전했다. 한 주민은 “출입구 쪽이 불길로 뒤덮여 있어 손님들이 옆문을 통해 먼저 빠져나오려다 몸이 엉켜 넘어지는 등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불을 지르고 달아난 뒤 500m쯤 떨어진 선배의 집에 찾아갔다가 3시간30분여 뒤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는 이 주점 단골이었으나 2∼3년 전부터 술값 시비로 주인과 다퉈왔다고 인근 상가 주인이 전했다. 이씨와 같은 마을 주민에 따르면 이씨는 부정기 선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몇 년 전 뇌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를 긴급체포한 경찰은 이씨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추가 조사와 함께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혐의가 확정되면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군산=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