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자녀인 줄 알고 합격시켰는데 ‘동명이인’?… 은행권 ‘채용비리’ 실태

입력 2018-06-17 13:4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검찰이 전국 6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집중 수사해 12명을 구속 기소하는 등 38명을 재판에 넘겼다. 내부적으로 남녀 채용 비율을 4대 1로 설정해 성별에 따라 차별 채용한 은행도 있었고, ‘청탁 대상자 명부’를 작성해 관리한 은행도 있었다. 심지어 특정 지원자를 위해 자격 조건을 변경하거나 점수를 조작한 경우도 있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17일 은행권 채용비리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수사는 검찰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자료를 이첩 받아 서울북부지검(우리은행), 서울서부지검(KEB 하나은행), 서울남부지검(KB국민은행), 부산지검(부산은행), 대구지검(대구은행), 광주지검(광주은행) 등 전국 6개 검찰청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동시에 이뤄졌다.

은행별로는 부산은행이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구은행은 8명이 기소됐고, 하나은행은 구속기소 2명을 포함해 6명이 재판을 받게 됐다. 우리은행은 6명이 구속 기소됐다. 국민은행(3명 구속기소 등 총 4명)·광주은행(2명 구속기소 등 총 4명) 관계자들도 재판에 넘겨졌다.

KEB하나은행 함영주(가운데) 은행장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으로 영장질실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나은행은 청탁 대상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공고 당시 없었던 ‘해외대학 출신’ 전형을 별도로 신설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하위권 지원자 2명이 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또 2013~2016년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남녀 채용 비율을 4대 1로 정해놓고 성별에 따라 별도의 합격선을 적용하기도 했다. 2013년과 2016년에는 실무 면접에서 합격권에 든 특정 학교 출신 지원자를 탈락시키고 명문대 출신을 합격시키기도 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5년 신입 행원 채용 당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남성 지원자 113명의 점수를 올리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춰 당락을 바꿨다. 또 임원의 자녀인 줄 알고 엉뚱한 사람을 채용시키려고 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채용 팀장 A씨는 부행장의 부탁이 없었는데도 평소 이름을 알고 있던 부행장 자녀와 생년월일이 같은 동명이인의 여성지원자를 부행장의 자녀도 잘못 알고 논술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켰다. 면접 과정에서 A씨는 부행장의 자녀가 남성이며 당시 군 복무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면접에서 탈락시키기도 했다.

우리은행 직원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19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은행은 지난 2015년 신입행원 채용 당시 서류전형에서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조카 등 불합격자 5명을 합격시키고, 면접에서 전 국정원 간부 직원의 딸 등 불합격자 7명을 합격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6년과 2017년 채용 과정에서도 다른 은행 간부들의 자녀들을 부정하게 합격시킨 혐의 등도 있다.

부산은행은 시·도(道) 금고 유치를 위해 채용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1조4000억원 상당의 경상남도 도금고 유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가 딸에 대해 채용 청탁을 하자 단계별로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그러고도 합격권에 못 들자 선발 예정 인원을 증원했고, 임원 면접 과정에서 예정에 없던 영어면접까지 진행해 합격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성세환 BNK금융지주 회장이 10일 오전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부산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광주은행에서는 2015년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 인사·채용 부문 총괄 임원이 2차 면접에 참여해 자신의 딸에게 최고점을 줘 합격시켰다. 앞서 해당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광주은행에 근무한다고 적었고, 인사담당자는 이 자소서에 만점을 줬다.

대구은행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입행원을 채용하면서 주요 거래처와 사회 유력인사, 부행장 등 청탁대상자 수십명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 감사 및 수사기관 수사를 피하기 위해 인사부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교체하고 채용 관련 서류를 폐기하도록 지시해 증거를 인멸하려 한 혐의도 있다.

대검 관계자는 “철저한 공소유지를 통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을 금감원 등 관련 기관에 통보해 채용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는 금감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전국 6개 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현재 신한은행 등 신한금융그룹 계열사에 대한 채용비리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