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를 필두로 한 세계 최강의 아르헨티나 공격진을 상대로 아이슬란드의 선전을 예상한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6일(이하 한국시간) 밤 10시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D조 1차전 경기에서 아이슬란드는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전통강호 아르헨티나를 잘 봉쇄 해냈다.
아이슬란드는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로 축구 프로리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 구로구 크기에 불과한 국가로 약 34만 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그럼에도 아이슬란드는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가 유력 진출 후보로 꼽히는 D조에서 복병으로 꼽혔다. 지난 유로 2016에서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꺾고 8강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킨 팀이기도 하다. 유럽 조별예선 7승 1무 2패로 크로아티아를 제치고 조 1위로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런 아이슬란드가 이번에도 메시의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아내는 ‘투지’를 보여줬다.
◆ 아이슬란드에게서 스웨덴을 보다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은 유사한 점이 굉장히 많은 팀이다. 수비라인과 미드필더라인의 타이트한 간격조절을 통해 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하는 4-4-2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한다. 아이슬란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역시 기존의 4-4-2에서 살짝 변형된 4-5-1 포메이션이란 굉장히 수비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
아이슬란드(184cm)와 아르헨티나(178cm)의 평균 신장 차는 무려 6CM. 아이슬란드는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준비한대로 침착하게 자신들의 수비전술을 유지해나가며, 높은 신장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싸움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확실한 컨셉을 들고 나왔다. 점유율이 2대8까지 밀리는 상황에도 역습을 통한 ‘한방’을 노리겠다는 아이슬란드의 강한 수비가 돋보였다.
스웨덴 역시 아이슬란드처럼 장신의 수비수들이 많다. 피지컬이 좋은 위력적 공격수들이 있기에 탄탄한 수비를 기반으로 길게 때려놓고 묵직하게 두드리는 선 굵은 축구를 구사한다. 기술보다는 힘과 높이로 상대를 압박한다. 후방 수비수들이 긴 패스를 날리면 장신의 선수들이 공간으로 침투해 싸워서 이겨내겠단 사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전통적인 전술이다.
막강한 수비력과 달리, 부실한 공격력은 스웨덴의 약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그들은 최근 A매치 3경기에서 무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룩셈부르크전에서 8골을 몰아넣은 뒤 치른 8번의 경기에서 4골에 그쳤다. 이러한 빈공 속에서도 치열했던 월드컵 유럽 예선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장신의 수비수들을 바탕으로 한 짠물수비 덕분이었다. 야네 안데르손 감독 체제에서 2년이란 시간동안 발을 맞춘 스웨덴 선수들의 4-4-2 빌드 완성도는 상당하다.
이근호KBS 해설위원은 “스웨덴은 한국이 시도하는 것과 비슷한 4-4-2를 하는 팀이다. 더 뒤로 물러난다는 점이 다르다. 수비수들의 키가 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상대가 크로스를 올리게 허용하고 그걸 헤딩으로 걷어낸다”라고 설명했다.
◆ 스웨덴의 ‘높이’를 봉쇄하라
한국대표팀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81.9㎝로 아시아에선 이란(184.5㎝, 9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그러나 32개국 중에선 19위로 전체 평균에 못 미친다. 상대 스웨덴은 23명의 평균 키가 185cm를 넘는다. 182cm의 한국보다 우월한 체격조건을 자랑한다.
높은 신장의 선수들이 콤팩트한 대형을 유지하는 스웨덴의 4-4-2는 좌우 측면에서 공간이 발생하기 쉽다. 하지만 탈압박에 능한 선수가 없는 한국 대표팀이기에 그러한 뒷공간 약점을 노리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의 강력한 피지컬을 최대한 버텨낸 뒤 손흥민·황희찬·이승우 등 빠르고 저돌적인 크랙들을 활용해 득점을 노리며, 수비에서는 센터백과 풀백 사이 역할 분배를 통해 스웨덴이 지닌 힘과 높이를 봉쇄해야 한다. 세트피스 제공권 싸움에서의 실점에 주의하며 발이 느린 스웨덴 선수들을 공략할 수 있는 빠른 역습 상황에 중점을 둬야한다.
아르헨티나는 센터백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까지 하프라인을 넘어와 공격을 조율하며 아이슬란드를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무려 27개의 슈팅을 시도하고도 1골을 얻는 데 그쳤다. 이중 메시는 10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답답한 공격이 계속된 것은 아이슬란드의 ‘높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세르히오 아구에로(173cm)는 안정환 MBC해설위원이 “선제골 득점 이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장신의 수비수의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꽤나 위협적인 상황을 많이 만들어냈다. 중앙을 뚫어내지 못한 아르헨티나는 측면을 공략하거나 혹은 높은 신장의 상대 수비수 사이들을 뛰어넘는 후방에서 정확하게 들어오는 패스를 날렸다. 신태용호에게 스웨덴을 공략하기 위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손흥민과 더불어 공격진에 선발 출전이 확실시되는 황희찬은 지난 1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1일차 훈련을 마치고 “스웨덴은 당연히 나보다 큰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런 큰 선수들과 부닥쳐 이겨냈을 때 희열감을 느낀다. 이겨내면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부딪치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몸싸움할 때는 요령이 있기 때문에 아프지 않다”며 각오를 다졌다.
◆ 아이슬란드의 투지, 약팀이 강팀을 상대하는 법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은 F조 최약체로 꼽힌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업체인 ‘그레이스노트(Gracenote)’는 한국이 F조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27%로 평가했다. 1차전에서 만날 스웨덴(34%)보다 낮은 수치였고 조 최하위다. 같은조에선 독일이 79%로 1위, 멕시코가 60%로 2위에 올랐다. 독일과 멕시코가 1위와 2위로 16강에 진출한다는 뜻이다. 브라질 월드컵 때 스페인의 부진, 한국의 경기 양상 등을 정확히 예측해 ‘문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영표 KBS해설위원 역시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확률에 대해 ‘현실적으로는 25% 이하’라고 내다봤다.
짠물수비를 바탕으로 한 1점차 승리, 그리고 상대 골문 앞에 서있는 장신 공격수의 머리를 겨냥한 롱볼 축구와 점유율을 내준 상황에서 ‘한방’을 노리는 빠른 역습 상황에서의 득점은 약팀이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카드다.
아이슬란드는 비록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점 1점을 얻어낸 건 매우 소기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하들그림손 감독 역시 “무승부는 아이슬란드에게 있어 대단한 성공이다. 아르헨티나가 이번 대회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환상적인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아시아 축구의 최강으로 꼽히는 이란 또한 아프리카의 모로코를 상대로 단단한 수비를 쌓은 끝에 행운에 자책골로 승리를 챙겼다. 호주 역시 아쉽게 패했지만 역시 끈끈한 수비를 바탕으로 우승후보 프랑스를 상대로 엄청난 선전을 보여줬다.
한국 역시 조직적인 강화된 수비를 보여준데 이어 아이슬란드의 ‘투지’를 이어가야한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은 점유율 2-8의 일방적인 열세 속에서도 거친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공을 소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뛰어야했지만 체력적으로 버텨냈다.
아이슬란드가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아냈듯, ‘약팀’의 다음 ‘이변’은 이제 한국의 차례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