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태권도장에서는 1품 심사비로 12만원을 달라고 했는데, 다른 동에 있는 B 태권도장에서는 11만원이라고 했어요.”
태권도 승품단 심사비가 학부모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심사비는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각 도장에서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심사비를 자율로 책정하고, 태권도 관련 조직들이 이 심사비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심사료와 추천료 등의 명목으로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학부모에 전가하고 있다.
도장에 등록한 아이들은 일정한 태권도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승급’을 한다. 만 15세 미만은 ‘품’으로, 15세 이상은 ‘단’으로 구분된다. 만 15세 미만은 4품까지밖에 응시할 수 없지만 만 15세 이후 품을 단으로 전환할 수 있다. 태권도 사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4단 이상의 단수가 요구된다.
일반적인 학부모는 태권도장을 통해 품(단) 승급 심사를 진행하게 된다. 절차가 복잡해 개인적으로 심사를 보는 자녀는 거의 없다. 이 심사비는 태권도장 자율로 매겨지는데 현재 승품단 심사비는 1품 기준으로 10만원에서 16만원 사이로 지역마다, 도장마다 가지각색이다. 대부분 도장들이 품수가 높아짐에 따라 심사비도 높게 책정하고 있다.
서울시 태권도협회 측에서 밝힌 승품단 심사비용은 1~4품(단)까지는 6만7000원, 5품(단) 이상은 7만2000원이다. 일선 도장과 약 5~10만원 가량의 차액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기원이 심사 권한을 여러 기관에 위임하면서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10여만원 가량의 승품단 심사비를 도장에 지급하면 시·군·구지회, 시·도협회, 대한태권도협회, 국기원 등 조직에서 추천료, 시행료 등의 명목으로 나눠 갖는다. 이 와중에 각 도장에서 교통비, 보험료, 특강료 등의 명목으로 심사비의 일부를 돌려받기도 한다.
문제는 학부모가 이 같은 금액의 사용 내역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도장에서는 전체 심사비용을 공지할 뿐 각 심사비의 세부 사용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A태권도장은 심사 접수비 외에도 ‘한국태권도장 추천료’ ‘용인대 태권도학과 동문회 장학지원금’ 등 심사비·추천료 명목으로 지출되는 내역의 항목만을 공개할 뿐 세부 금액은 알리지 않았다.
국기원·협회 측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기원과 서울시태권도협회에는 심사비를 공지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었다. 국기원 내 심사 담당자에 문의해도 일반 사용자가 심사비 세부 사용내역을 알기는 어려워 보였다. 담당자는 공식적인 심사비를 묻는 질문에 “지역마다 다르다”는 답만 했다. ‘협회 측에 문의하니 1~4품까지는 6만7000원이라고 하던데 맞느냐’고 물으니 “아마 협회 측에서 알린 내용이 맞을 것이며 각 도장 측에서 추가 금액을 산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소비자인 학부모들은 심사비가 각 도장마다, 품수마다 다른 것도 이상한데 여러 조직에서 심사비를 나눠 갖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태권도장에 자녀를 등록한 학부모인 이세영(36)씨는 “심사비가 비싸기도 한데 여러 조직에서, 특히 도장에서 이거를 떼먹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아이를 도장에 보내면서 이런 내역을 꼼꼼히 따져 물어보기가 쉽지 않은 점을 이용해서 뒤로 돈을 착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같은 도장에 딸을 등록한 학부모 김학두(42)씨는 “국기원에서 주관한다는 심사에 아이가 등록해서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된 심사가 이뤄지는 지도 의심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몇 년간 지속된 소비자들의 문제제기에 정부도 현황을 파악하고 대응에 나선 상태다. 1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태권도 미래 발전전략과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10개 핵심과제 중 하나로 태권도 심사 및 단증발급 체계 개선안을 정했다. 개선안에는 현행 심사 수수료 내역을 전면 공개하는 한편 심사비와 관련해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문체부는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 강화를 추진하는 한편 다른 지역 심사에도 심사 대상자가 참가하는 방안도 시행할 방침이다.
김종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