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도 해” “형, 이사해” 8전9기 송철호에게 노무현·문재인이 한 말

입력 2018-06-15 10:18 수정 2018-06-15 12:25
왼쪽부터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문재인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8전 9기의 값진 승리를 거둔 인물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철호(69) 울산시장 당선인이다. 송 당선인은 13일 득표율 52.9%(31만7341표)를 얻어 자유한국당 김기현 후보(40.1%·24만475표)를 제치고 민주당 첫 울산시장이 됐다. 그는 누구보다 극적이었던 승리의 뒷이야기를 1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전했다.

진행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국회의원 6번, 울산시장 2번, 총 8번 낙선하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송 당선인은 “저는 부끄럽다”면서 “말씀하시는 분들은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고 답했다. 첫 실패는 그가 40대 초반이었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울산 중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가 3위로 낙선했다. 그는 “노무현 선배가 이거 해야 한다고 그래서 시작했는데 26년의 세월이 그냥 하루 같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송 당선인은 1980년대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영남 인권변호사 3인방으로 유명했다. ‘울산의 노무현’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선배’라고 부른다. 문 대통령은 송 당선인을 ‘형’이라고 호칭한다. 세 사람은 차례로 1946년, 1949년, 1953년에 태어났다. 김 총수가 “노 전 대통령이 ‘동생 거기 꼭 나가야 해’라고 하셨던 거냐”고 묻자 송 당선인은 “그렇죠”라고 했다.

송 당선인은 “그때 울산의 도시 색이 제일 강했다. 철도 없고, 인권변호사라고 좀 깝죽대던 제게 나가서 ‘손을 좀 시원하게 봐줘라’ 그런 의미였는데 저도 이것 때문에 난리도 쳐놓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를 강조하며 보수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울산에 송 당선인의 출마를 권유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송 당선인은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났지만 전북 익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호남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거듭 낙선했지만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털어놨다. 그는 “마음이 약한 죄다. 중간에 그만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선에 출마했던 때를 떠올렸다.

송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이 그때 ‘내가 대통령 후보 됐는데 영남 지역에서 단 한 석이라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을 못 떨어뜨리면 후보 사퇴하겠다’고 말하셨다. 저를 붙들어다가 싸워서 이기겠다고 대책 없이 그렇게 하셨던 거다”라며 “나한테 ‘당신이 울산에서 이겨줘야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약해놨는데 책임져줘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2002년 선거였는데 좀 어려웠다. 총대 메고 나가서 깨지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중에도 저를 부르셨다”고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이 끝나면 또 나가자”며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던 송 당선인을 설득했다고 한다. 막역한 사이였던 두 사람은 애정이 섞인 설전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이 “우리 나가자”고 하면 송 당선인이 “무슨 말씀이냐. 그렇게 깨졌는데 명예도 있고 그만하자”고 반발하는 식이었다. 논쟁은 다음과 같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지역주의 극복했나. 대통령 배지 하나 있다고 만족하라는 거냐” 대통령 임기 마치고 나가면 분명 떨어집니다” “떨어져도 해야지. 전 세계인한테 대한민국 민주주의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고 알려야지” “해외 토픽에 나옵니다” “그러면 더 좋지”

문 대통령도 송 당선인을 적극 지지했다. 문 대통령은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로 있던 2011년 송 당선인을 만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제안했다. 이때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형 이사했다며. 다시 이사가서 해라” “이사한 지 넉 달밖에 안됐는데. 나는 내 맘대로도 못사나” “그게 운명인데 우짭니까” 송 당선인은 결국 다시 울산 중구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고 2위로 떨어졌다.

송 당선인은 “가족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털어놨다. 당선이 확정된 뒤에는 가장 먼저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생각이 났다고도 했다. 송 당선인은 “지역주의가 많이 약화된 것 같다. 그래서 전 큰 희망을 봤다”며 “문 대통령께서도 워낙 잘해주셨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