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54) 제주지사와 남경필(53) 경기지사는 닮은 점이 많았다. 30대의 젊은 나이로 정치에 입문했고,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개혁과 쇄신을 주장하며 ‘젊은 보수’로 기대를 모았다. 각각 제주지사·3선 의원, 경기지사·5선 의원 등 굵직한 경력을 쌓았다. ‘국정농단’에 따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선 새누리당을 탈피해 바른정당에 들어갔다. 이후 국민의당과의 합류 움직임에 반대해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여기까지였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 지사는 새누리당의 후신인 한국당으로 ‘복귀’했다. 원 지사는 정당 없이 무소속 출마했다. 모두 이번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계산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남 지사는 재선에 실패했고, 원 지사는 성공했다.
◇원희룡 “한국당이었다면 힘들었을 것”
원 지사는 13일 진행된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51.7%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며 당선인 신분이 됐다. 문대림 민주당 후보보다 11.7% 포인트 높은 수치로 대승을 거뒀다. 그는 “더 잘하라는 채찍질이라는 점 잘 알고 있다”며 “도정에 전념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원 지사는 이번 6·13 지방선거 17개 광역단체장 중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다. 일각에선 무소속 출마가 ‘정치도박’이라는 평이 나왔다. 원 지사는 14일 오전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무소속 출마 이유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원 지사는 “바른정당은 정말 어려운 길을 각오하고 나왔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보수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전면적으로 환골탈태하겠다’ 해서 나왔다”며 “(바른정당이) 하지만 탄핵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방선거 하려고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을 하려 했다. 이에 대해 과연 국민들이 관심이 있겠느냐 그렇게 봤던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무소속이 아니라 한국당 당적이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예상하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아마 확실히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남경필은 ‘도로 한국당’
남 지사는 6·13 지방선거에서 35.51% 득표율에 그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선인(56.4%)에게 크게 패했다. 가정사, 스캔들 등 이 당선인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남 지사는 어떤 긍정적 영향을 얻지 못했다.
남 지사는 패색이 짙어진 이날 오후 10시20분쯤 경기도 수원 자유한국당 당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죄송하다. 저의 책임이 크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중도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며 “국민의 뜻을 무겁게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중도 진영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지난 1월 한국당에 복당계를 냈다. 앞서 바른정당을 탈당한 그는 “보수통합 없는 바른정당은 사상누각일 뿐”이라며 “고사 직전의 위기에 빠진 보수를 살리기 위해 또 한번의 정치적 선택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도통합에 앞서 흔들리는 보수부터 통합하고 혁신해야 한다”며 “허약하고 분열된 보수를 일으켜 세우는 첫걸음은 제1야당이자 보수의 본가인 자유한국당의 혁신”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혁신은 없었다. 오히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 당선인의 가족사를 들춰내며 네거티브 공세를 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향후 거취는
6·13 지방선거는 정권심판이 아닌 보수심판으로 귀결되면서 보수야당의 쇄신을 기대하는 민심이 확인됐다. ‘무조건 반대’ ‘철 지난 색깔론’을 고수하다 몰락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든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원 지사는 보수의 희망으로 발돋움하며 향후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다졌다는 분석이다. 원 당선인은 심판 대상이 된 한국당, 바른미래당과 끝까지 선을 그었고, 인물론을 바탕으로 지사직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는 “도민의 명령 전까지 중앙정치를 바라보지 않고 도정에 전념하겠다”며 일단 선을 그었다. 하지만 향후 범보수 단합 요구가 충분히 모였다고 판단될 경우 이른 시기에 무대에 설 수 있다.
반면 남 후보는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 이미 한 차례 대권도전을 했다가 낙마했고, 경기지사와 5선 국회의원 등 이력에 걸맞은 활동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선거 막판 이 당선인의 스캔들의 힘입어 ‘예상보다’ 크게 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남 후보는 패배 후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긴 걸음으로 호흡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홍준표 대표 사퇴 후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