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다, 여성=~요’?… 남녀 性역할 고정관념 가르치는 교과서

입력 2018-06-14 15:00 수정 2018-06-14 15: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어 교과서 ‘여성적’ ‘남성적’ 단위를 삭제해 달라”는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부터 고등학교 수능특강까지 다양한 국어 교재에서 ‘시’의 어조나 ‘글’의 어조를 말할 때 ‘여성적 어조’ ‘남성적 어조’라고 가르친다”면서 “여기서 말하는 여성적 어조는 ‘~요’이고 남성적 어조는 ‘~다’이다”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이어 “현대어에 여성들만 ‘~요’를 사용하는가? 여성이 ‘~요’를 안 쓰면 그 여성은 남성인가?”라며 “여성들만 ‘~요’를 쓰는가? 남성적 어조도 같은 이유로 이 용어들은 성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의지적 어조나 경어체로 하루빨리 바뀌길 바란다”고 적었다.

◆ ‘힘 센’ 남자 VS ‘예쁜’ 여자… 교과서에 숨은 성 역할 고정관념

청원인이 지적했듯이 교과서 속 삽화, 이미지, 표현 등에서 성 역할 고정관념을 내포하는 표현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발표한 교과서 속 성차별 사례들을 보면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표현들이 다수 포함됐다. 남성은 활동적인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강조하고 여성은 다소곳하고 얌전한 이미지로 그렸다. 체육활동을 묘사하는 삽화에서도 응원단은 모두 여자, 심판과 감독 및 선수는 모두 남자로 표현한다.

한 초등학교 체육 교과서에서는 사춘기 신체 성장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 내용과 관계없이 남학생은 ‘힘이 세다’ ‘운동을 좋아한다’ 등의 표현들과 함께 튼튼한 신체를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여학생은 ‘예쁘다’ ‘날씬하다’ 등 외모를 묘사하는 표현들 속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귀여움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학생은 푸른색의 상의와 바지를, 여학생은 분홍색의 원피스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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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남학생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여학생은 분홍색 가방과 인형을 떠올리는 것으로 묘사한다. 4학년 사회 교과서 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남성으로 그려졌고, 연구원으로 일하는 사람도 모두 남성으로 제시됐다. 양평원은 “초등학생에게 교과서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교육과정 개정시 교과서 속에 스며든 성 역할 고정관념을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자 3명 모인 브런치 모임을 단속”… 성차별 범람하는 TV 프로그램

성차별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내용은 국내 TV 예능과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만연하다. 양평원이 지난 4월에 발표한 대중매체 양셩평등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예능과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성차별적 내용은 총 56건으로, 성평등적 내용(7건)의 8배에 달했고, 전년도 7월 모니터링에서 집계된 성차별적 내용(19건)과 비교해도 3건가량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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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양평원은 여러 프로그램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종편의 A 프로그램에서는 한 남성 출연자가 “적어도 브런치 모임이 있는 한 정부가 어떠한 부동산·교육 정책을 내놔도 성공할 수 없다”며 “정책이 발표되면 바로 다음 날 브런치 모임을 갖고 작전을 설계해서 단합 행동을 한다. 여자 3명 이상 모인 브런치 모임을 단속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왜곡된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냈음을 지적했다.

케이블의 B 프로그램에서는 한 남성 출연자가 “예쁜 것 같다 하는 분들은 앞으로 앉아 주시고, 난 좀 아닌 것 같다 하는 분들은 뒤로 자리를 좀 바꾸는 시간을 갖겠다”라며 여성 방청객의 외모를 폄하하고 놀림거리로 소비하는 등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했다고 밝혔다.


이수연 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녀 갈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에 기댈 게 아니라, 문화와 인식개선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냈다. 이 박사는 “사실 우리나라는 이혼여성 지원제도, 육아와 양육을 위한 지원금 등 법과 제도는 거의 다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여전히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문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투 운동도 성폭력과 관련된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피해자를 탓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국 언론과 교육을 통해 성 평등 문화를 조성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