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선언문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비판론과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한 합의라는 긍정론이 엇갈린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란 표현이 빠진 것을 지적하는 비판적 시각과 달리 긍정론자들은 ①북미 후속회담을 약속한 점 ②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점이 이번 회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외교안보 당국자 출신의 한 북한전문가는 “비핵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면서 공동선언문에서 CVID가 빠졌음에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상회담 전에는 ‘CVID’ ‘CVIG’가 중요하다고 봤지만 그건 비핵화 문제 하나만 봤을 때 그런 거고 이번 합의를 통해 비핵화의 논의 틀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비핵화해야 체제 안전이 보장되고 관계가 개선되는 게 아니라 정세가 변했기 때문에 비핵화를 한다는 명분을 세우려 했다”며 “강제적 비핵화가 아닌 자발적 비핵화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할 우선 조치가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2~3주 내에 (북한의) 액션이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비핵화를 해나가는 과정이 향후 전개되면서 미국과 진전된 관계로 나아가는 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북한전문가는 공동선언문이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합의의 핵심은 후속 회담을 열기로 했다는 것과 정상이 사인한 문서가 나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는 것은 자기 얼굴을 거기(선언문)에 박아넣었다는 뜻이다. 북한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중요시하는 것도 김 위원장의 서명 때문이다. 싱가포르 선언문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도 그렇게 다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20% 진행되면 불가역적’이라고 언급한 것은 불가역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고, 그게 어떤 조치, 어느 시기, 언제까지 뭘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학적으로도 어느 단계가 어느 시기를 의미한다 짚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신기욱 스탠퍼드대학교 한국연구소장도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공동합의문은 비핵화뿐 아니라 북한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미래 협상을 감안하면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는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북미정상회담 이후 갖게 된 의심을 선의로 해석을 할 가치가 여전히 있다”고 덧붙였다.
신 소장은 CVID는 북한이 핵무장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 정상국가가 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 계획 기본틀을 공개했던 초기 단계(2003년)에서는 CVID가 유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도 CVID가 더 이상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고, 김 위원장이 CVID를 쉽게 동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에 핵폐기 검증 절차나 비핵화 일정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문이 과거 합의보다 후퇴한 선언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문은 매우 애매 모호하고 일반적이며 어떤 의미도 없을 것 같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검증이나 비핵화 일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비핵화를 어떻게 진행할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어떻게 다시 가입하도록 할지 등도 다뤄지지 않았다”며 “(합의문이) 채택을 5분 남겨놓고 작성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추후 움직임에 대해선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성명을 토대로 행동 계획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파트너 국가들을 찾아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다자간 절차를 밟을지 지금과 같은 양자간 절차를 계속할지에 대해 근본적인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지애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