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의 결과물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높이 평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감사한다”는 반응이 나온 반면, “회담 결과는 온통 실망뿐”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 빅터 차 “전쟁 일보 직전서 일궈낸 성과”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는 ‘시작이 반’이라는 한국 속담을 인용하며 “전쟁 일보 직전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끌어낸 성과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한국 정부의 역할이 컸음을 강조했다.
차 교수는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5개월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북한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외교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인정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을 고립 상황에서 스스로 걸어나오게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창의적인 ‘올림픽 외교’에,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결정에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당시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은 본인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트럼프 대통령을 존중하는 의미로 회담장에 아침 일찍 도착했고, 트럼프는 나이 많은 초대자로서 김 위원장을 회담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에도 좋은 분위기를 조성한 점 등은 정상회담이 신뢰를 쌓는 기회가 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차 교수는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그는 “두 정상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합의문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빠진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적 선택지엔 항상 ‘나쁘거나’ 아니면 ‘더 나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면서 “이제 김 위원장은 완전한 핵 폐기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하며, 북한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한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갈루치 “합의 내용 과대평가 말아야”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38노스 기고문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실망뿐이었다”고 혹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핵 폐기 로드맵은커녕 진전된 비핵화 약속조차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루치 전 특사는 이번 회담의 득실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미국은 북한 측으로부터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핵실험장 폐기, 탄도미사일 시험장 폐쇄, 미군 포로 송환 등을 얻어냈다. 그 대신 미국은 국제적으로 소외당하던 북한 지도자와의 회담에 나섰고 대북 제재도 사실상 약화시켰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도 내줬다.
그러면서 갈루치 전 특사는 미국이 이번 합의 내용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흥분을 내려놓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루치 전 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손뼉을 마주치며 ‘임무 완수’ 선언을 하지 않고, 노벨상에 욕심을 내지 않고 순진하고 어리석은 대화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개발 능력을 제거하는 작업을 투명하고도 현실적인 방식으로 실천토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훈련 중단 시사 발언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자기 정원을 돌봐야 한다. 다시 말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미국 본토와 동맹국을 방어하고 억제력을 제공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이 의심받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