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영매체들이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용기 이용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최도지도자가 집권 후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타국 항공기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당당히 전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조미(북미)수뇌상봉과 회담이 개최되는 싱가포르를 방문하시기 위해 10일 오전 중국 전용기로 평양을 출발하시었다”면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환송 나온 당 및 정부 지도간부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중국 전용기에 오르시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면에 걸쳐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출발과 싱가포르 도착,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접견을 보도했다. 함께 실린 16장의 사진에는 김 위원장이 중국 오성홍기가 새겨진 항공기를 타고 내리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김 위원장이 항공기 트랙 위에서 손을 흔드는 사진은 중국 지도자의 해외 순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오성홍기가 커다랗게 박혔다.
김 위원장은 전날 오후 2시36분(한국시간 3시36분)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747기를 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이 항공기는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등 중국 고위급이 전용기로 이용해 왔다.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측에 임대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전용기인 참매1호 대신 중국에서 빌린 비행기를 이용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매1호는 1995년 이미 단종된 IL(일류신)-76 기종이다. 노후한 비행기여서 100% 안전 운항을 장담키 어려워 중국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보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체면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스타일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관계가 여전히 굳건함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의 보도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김 위원장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던 소식은 김 위원장이 평양에 귀환한 이후에야 보도됐다. 두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 싱가포르 방문 보도 시점은 상당히 빠르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서방 외교무대에 나서는 최고지도자의 ‘광폭 행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